기쁘거나 슬프거나..

앞으로 더 사랑하며 살자!

김 정아 2007. 2. 16. 05:13
 2007년 2월 14일 수요일

 

오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친구 부부랑 외식을 하기로 했으니 아이들의 저녁은 미리 준비해서 먹이라는 것이다.

‘애들도 빼놓고 어른들만 무슨 저녁을 먹겠데? 오늘이 뭔 날인가?’했다.

도착해 알아보니 발렌타인데이라 특별한 날이라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난 발렌타인데이를 특별한 날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와서도 아이들 학교에 가져갈 초코렛 준비하고(선생님들께서 학생들 명단을 미리 집으로 보내면 그 수자에 맞게 보내야 된다) 선생님들 것 준비해서 보내는 걸로 그만이었고, 하다못해 남편에게도 초코렛을 주어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이 발렌타인과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였다.

그날은 교실마다 온통 난리였다.

수업에 집중이 전혀 안 되고 종 울리는 시간만 기다리다 학생들은 이 교실 저 교실 초코릿을 들고 오가고, 교실과 복도 계단은 온통 쓰레기들로 진을 치고 있는 굉장히 어수선한 날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몇 십 만 원짜리 바구니를 만들어 이성 친구에게 준다고 들고 오기도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의 유아적인 발상, 제과회사들의 간교한 상술에 같이 휘둘리기도 싫어서 난 그냥 넘어 가곤 했다.


저녁 먹을 시간 치고 이른 6시에 식당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40분을 기다리다 들어 가 앉을 수가 있었다.

둘러보니 많은 연인들, 많은 부부들이 와서 사랑의 날인 이 날을 축하하고 있었다.

친구 부부는 이날 특별히 해마다 외식을 하고 부부 서로가 선물을 주고받는 다고해서 ‘오늘이 특별한 날이긴 한가 보다. 내년엔 나도 남편을 위해 뭔가를 준비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 몇 주 우리 부부는 갈등과 화해가 반복되는 지루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회사 일이 많이 힘든지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 한마디 실수한 걸로 나를 몰아부쳤다.

 

성격상 난 말이 많지 않은 편이다.

친구들을 만나도 적당히 이야기하고 많이 듣는 편이다.

남편과도 마찬가지다.

저녁에 몇 분 마주 앉아 있어도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다.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단내가 나도록 말을 하고 오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쉬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꼭 필요한 몇 마디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수다가 많지 않은 내가 하는 몇 마디에서도 꼬투리를 잡아 불같이 화를 냈다.

더 따지기도 싫어 마음속에 담아 두고, 남편 입장에서도 내가 너무 미웠는지 3일간을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겨우 화해를 했다.

 

그리고 평화롭게 며칠 지내다 또 다시 같은 이유로 냉전에 돌입했다.

얼마나 분하고 서러운지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 시간을 울었다.

아침에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미안하다며 서로의 생각을 진지하게 나누었다.

서로 내 잘못이라고 화해하고 나간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앞으로 잘 살아 보자고 다시 맹세하고, 깊은 마음으로 사랑을 확인했다.

희뿌옇게 머릿속에 뭔가 끼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아주 맑아졌다.

 

*발렌타인 파티한다며 저런 푸들 치마를 입고 오라고 했다네요.

저 치마 구하기가 힘들어 천 사다가 만들어 준 엄마들도 있다던데, 앞집 일본 아줌마가 알아서 빌려 주어서 전 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