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박완서님의 '그 남자네 집'을 읽고.

김 정아 2007. 4. 14. 06:25
 

2007년 4월 13일 금요일

친구 집에 갔다가 책장을 뒤져 몇 권의 책을 빌려왔다.

제일 먼저 펼쳐 든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의 화자는 저자와 비슷한 연배의 ‘나’이다.

아파트에 살던 후배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 방문하면서 이 책의 내용이 시작된다.

우연히도 후배는 아주 오래전 자신이 살던 동네로 이사를 가고, ‘나’는 골목을 마주하고 살던 ‘그 남자네 집’을 떠올리며 추억에 빠져든다.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의 경계가 생긴, 아주 어수선하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궁핍했던 시절 그 남자네는 아버지는 다른 형제들을 데리고 북으로 가고, 그의 어머니는 군대에 간 그 남자를 기다리며 서울에 홀로 남게 된다.

미군 부대에 근무하던 나는 어느 겨울 퇴근길에 우연히 그 남자를 만나 데이트라는 것을 하면서 조금씩 연인으로 발전해 가는 듯하다가 아무 언질을 주지 않던 그 남자를 떠나 나는 은행원과 결혼을 하게 된다.

나중에 그 남자가 나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혼한 나는 시장 보는 시간을 내 그 남자를 만나 은밀한 밀담을 나누어 간다.

하루는 청량리역에서 만나 그 남자의 별장을 가기로 했는데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그 남자 뇌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벌레가 나오고 시신경을 잘못 건드려 그 남자는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그 남자는 퇴원을 하고 다시 볼 수 없는 눈으로 나의 친정집에 자주 들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고 했다.

많은 훈련을 통해 그 남자네 집과 친정집을 정상인처럼 찾아다닌다고 했다.

(영화 클래식에서 김승우가 전쟁터에서 시력을 잃고 사랑했던 손예진 앞에 멀쩡하게 나타나기 위해 만날 장소로 정해진 곳을 며칠 전부터 연습했던 장면이 오버랩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

그 남자의 부음을 신문에서 보고 나는 그를 찾아 가지는 않았다.

단지 그 이전의 마지막 만남에서 우리는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한 포옹을 했다.

그것으로 이미 그와 마지막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여성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었다.

가정에 충실하고 자상한 남편을 가진 그녀가 첫사랑과의 만남을 길게 유지하는 것에 내가 더 가슴이 졸여왔다.

‘이쯤에서 그만 끝내’, ‘더 나가는 것은 파멸이야’, '더 나가면 넌 불륜으로 가는거야', ‘훌륭한 남편을 가진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래’ ‘너는 유부녀야, 네 가정을 지켜야 해’ ' 불륜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용서 받지 못할 범죄 행위야. 더군다나 지금은 60년대야 빨리 정신차려!'하면서 내가 더 흥분하고 안타까워 마음속에서 그녀에게 외친 말들이다.

내 기우와는 달리 그들은 서로의 생활로 각자 돌아온다.


 

*풋풋한 대학 1학년 시절, 만난 지 8개월 만에 수줍게 손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어도 서로 첫사랑이라 믿었던 그가 나에게는 첫사랑이었다.

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첫사랑을 그리워 해 본적도 없고,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해보았다.

일반적으로 첫사랑이란 이룰 수 없어서 더 간절하고 애절한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