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12일 월요일
성견인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를 키우는 친구에게 빌린 ‘말리와 나’라는 책을 읽었다.
모든 동물들에 대해 난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도 항상 우리 집엔 누렁이가 있었는데, 난 그 개들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은 적도 없고 예쁘다고 쓰다듬어 준적도 없었다.
앞으로도 애완견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다 집을 떠나고 정말 노후가 따분하고 심심해 지고 말동무가 없을 때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인 그로건과 그의 아내 제니가 결혼을 하면서 애완견을 키우는 연습을 하며 새 생명을 맞게 되는 준비를 한다.
그들은 정말 운도 없이 ‘말리’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 최악의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사 온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라는 증상을 가진 말리는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온갖 일을 저지른다.
나로서는 결코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끔찍한 행동장애를 일으킨다.
의자 다리를 씹어서 부러트리고 키친 타올, 크리넥스, 영수증, 콜크 마개, 병뚜껑 등 모든 물건들을 삼켜 버린다.
심지어는 생일 기념으로 받은 비싼 금목걸이까지 삼키기도 한다.
천둥 번개에 대한 과잉 불안 증상으로 차고를 부수어 버릴 정도로 난장판을 만들고 온몸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플로리다의 예고치 않은 수많은 천둥 번개에 익숙할 만도 하건만 일생을 살면서 그런 짓들을 되풀이 하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두 부부는 아이 키우는 일과 동시에 말리까지 돌보아야 해서 그들의 스트레스가 어떤 땐 최고조에 치솟을 때도 있었다.
관목 한 그루를 정원에 심어놓았는데 뿌리째 씹어 산산조각을 내고, 현관 방충망 문을 들이받아 뚫어 놓고, 문 벽을 마구 긁고 파대며, 구두 베개를 씹어 놓으면 어느 주부가 화가 나지 않을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못 견뎌 우울증까지 앓고 있는 제니가 분에 겨워 소리를 지른다.
“제발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 데리고 나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어”
그러나 또 그들은 그 상황에 다시 적응이 되어가고 이젠 그 혈기 왕성한 말리도 나이가 들어 가는귀가 먹고, 관절염을 앓으며, 2층에 올라가기도 힘들어 하며, 온몸의 털이 뭉텅이로 빠지는 늙은 개가 되어 간다.
그러다 장이 꼬여 결국은 안락사를 당하고 말리는 그로건의 뒷마당에 묻혀 일생을 마무리한다.
난 이들의 끝없는 인내심과 말썽꾸러기 개를 향한 애정에 혀를 내 둘렀다.
그들은 말리의 일생을 통해 또한 사람의 일생을 배운다.
인생이 짧다는 것, 순간의 기쁨과 놓쳐버린 기회, 인생의 전성기는 한 때 뿐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는다.
개를 좋아하진 않지만 읽는 내내 사람의 감성과 통하는 일치를 보았고, 감동도 느꼈다.
그리고 어렵지 않은 책이라 손에 들고 빨리 읽어 내려갔던 책이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한 감동을 느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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