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교장선생님의 학부형 소환을 받은 날

김 정아 2003. 9. 18. 04:31

9월 9일 화요일

학교에서 돌아오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원석이 학교에서 오라고 해 약속을 잡아 놓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니 먼저 가 있으라고 한다.

다급하게 전화를 끊어서 자세한 사항을 물어볼 수 없었으니 도대체 왜 오라는 건지? 혹시 뭔가를 잘못해서 학부형 소환을 받은 건지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가는데 반바지 차림으로 갈 수 없으니 치마로는 갈아입어야겠고,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것인데 빈손으로 갈 수도 없고, 화장도 좀 해야겠는데 정해진 시간은 촉박해 오고 정신없이 화분하나를 사서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대충 챙길 것을 챙겨서 학교로 가는데 왜 이리 마음은 무거운지?

사무실에 들러서 MRS. JOHNSON을 찾으니 왜 교장선생님을 찾느냐는 것이다.

난 E S L선생님인줄 알았는데 교장 선생님이라니...

‘우리 애가 잘못을 해도 엄청난 잘못을 했구나’라는 중압감이 온 몸을 짓누른다.

교장선생님의 직접적인 소환이라니...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너무나 반가워하며 대뜸 “Thank you”라는 소리를 여러 번 하시며 악수를 청한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아이가 잘못을 한 건 아닌 분위기인데’

장황하게 여러 가지 설명을 하며 나를 데리고 E S L 교실로 간다.

대충 듣자하니 paper work를 하자는 것이다.

E S L학생들이 시험을 보면 교장선생님과 E S L 선생님과 학부형 대표 한사람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서류에 사인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학부형 대표라는 것이다.

교장선생님과 교실에 들어가니 원석이를 담당하고 있는 E S L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여러 가지 서류를 내게 들어 보이며 교장선생님이 설명을 하신다.

이번에 E S L학생들이 시험을 본 결과인데 만점의 40%가 넘어야 통과된다고 하며 학생들 하나 하나의 시험지에 sign을 하라는 것이다.

아니, 남의 시험지에 내가 왜 사인을 해야하며 만약 뒤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생각하다가 사인을 하겠다고 하니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시험지를 보여주며 이 아이는 읽기가 부족하다, 저 아이는 쓰기가 부족하다 설명을 하신다.

그리고 총A단계에서 F단계까지 중 아이의 최종 성적이 나와 있다.

F단계가 가장 우수하고 더 이상 E S L에 있을 필요가 없고 일반 교실로 들어와 일반 아이들과 같이 경쟁할 수 있다.

그런데 시험지를 보니 성인 영어 반에서 쓰는 것과 똑 같았다.

난 그 테스트에서 B를 맞아 너무 속 상해 한동안 수업에 나가는 것도 의욕이 안 생겼고, 나와 친한 완타니의 F와 구미꼬의 E와 비교되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참담했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이 들어와 교장선생님은 남편에게 자세히 다시 설명을 하셨다.

내가 이해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니 그간 나의 영어 듣기 능력은 많이 향상되었나 보다.

모든 일이 끝나고 악수를 하고 헤어지면서 E S L선생님은 매 6 Week마다 우리가 미팅을 해야 한다고 하며 그것이 LPAC 모임이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LPAC 미팅의 E S L학부형 대표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한 줄 알고 갔다가 얼떨결에 감투하나 쓰고 온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