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4. 25. 목요일
school 버스를 타고 하교하는 원석이가 같은 반
친구에게 "Good Bye"라고 인사를 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단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
아이
였다.
아이가 어제,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었다고 했다.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왔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자기 이야기를 다 알아들었다고도 했다.
원석이가 어느 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나도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찡했다.
하루 온 종일
한 마디도 못하고 오는 것이다.
그림 그리다 오고 한문 책 가지고 가서 한자 공부하고 오고 삼국지 읽고 오고.
그러던
아이가 드디어 말문이 트였다.
여기 온 지 두 달 만이다.
'아 이렇게 해서 익혀 가는 구나.'
덩달아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영어 못한다고 괴롭히던 아이가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말은 잘 못하고 단어의 뜻은 잘
몰라도 가끔 단어를 읽는 걸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거리의 간판들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영어 책들을 그럴싸하게 읽어
낸다.
여기 온 보람이 서서히 나타나는 구나.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4월 27일
토요일
다음 주 수요일이 스케이트 day라고 했다.
원석이가 아주 신나 있다.
스케이트 실력이 가히 프로
급이다.
예전에 군에 있을 때 스케이트 대표 선수였던 과장님한테 개인 지도를 받고 나서는 내가 봐도 모양새가 거의
예술이다
선아 엄마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지금까지 자기를 놀렸던 아이들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빠가 가정 통신문을 보고 위치를 알아보더니 연습하러 가자고 했다.
그 날 가서 하는 것 보다 어떻게 생겼는지
사전 답사를 하고 미리 연습을 해 두면 더 잘 탈 수 있을 것이라 해서.
온 가족이 원석이 스케이트 day에 목숨을
걸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넓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가 본 적이 있는 한국의 롤러 스케이트장과
비슷했다.
많은 아이들이 와서 타는데 내 눈에는 원석이만 보였다.
김동성 폼으로 트랙을 도는데 제일 빨리
돌았다.
나연이는 어기적거리며 따라가고.
아이들이 지칠 때까지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원석이의 한마디가 또 나를 기쁘게
했다.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좋겠네"
"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그래 제발 놀아라.
맘껏 놀아라.
엄마 소원이다.
아이들은 잠깐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걸까?
기특한 내 아들 !
이렇게 빨리 말문이 트일 줄 몰랐다.
가슴 졸이며 지켜온 날 들이
헛되지 않는구나
원석이는 지금 5학년이 된 저의 큰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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