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휴스턴을 탈출하며.

김 정아 2005. 9. 25. 05:00

2005년 9월 22일 목요일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는 기약도 없이 아이들에게 오늘부터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곳 저곳에 전화해 허리케인 리타를 피해 피난을 갈지, 남을지를 물어도 어느 한 사람 흔쾌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다.

 

4급이었던 리타가 어제 밤을 기점으로 5등급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난 극도로 공포감이 느껴져 T.V를 꺼버렸다.

 

피난을 가던 안 가던, 일단 아이들과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액자 , 시계 등을 떼어 유리창이 없어 가장 안전한 옷 방에 넣어 두면서 만약 피난 갈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4식구 옷 방에 들어앉아 손을 꼭 잡고, 서로 위로하며, 기도하며 리타를 맞아야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도 사무실을 나가야 한다고 갔다가 이곳에 유학 온지 일주일 밖에 안 되는 유학생들을 데리러 다운타운에 갔는데 피난 가는 행렬이 거대한 주차장을 이루어 꼼짝을 못한다고 하니 언제 도착 할 지 모른다는 연락이 왔다.

 

예전엔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오는데 그곳을 탈출하지 못해 인명 피해를 입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빨리 서둘러서 나오면 될 것을 왜 못나오고 죽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로가 저렇게 막혀 움직이질 못하는데 , 더군다나 나오더라고 몇 시간을 가야 될지도 모르는 데 기름도 없어 중간에 서 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 버려 그것이 더 불안해 어쩔 수 없이 피난을 못 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남부 지역 정유시설의 대부분이 지난 번 카트리나 때 많은 피해를 입어 기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휴스턴 일대의 기름이 바닥이 나 버려 대부분의 주유소가 문을 닫아 버린 상황이다.

 

평소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시간에 걸쳐 가야 된다는 소리도 있는데 ,그래서 기름이 떨어질 수 있는 사태가 눈에 보이는데 , 벌써 고속도로에 기름이 없어 차가 서 버렸다는 소리를 귀로 듣고 있는데 그것을 알고도 탈출을 감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을 운전한다 해도 기름만 원활하게 공급된다는 보장만 있어도 일단 나서 보겠는데.... 
앉아서 당해야 하는가? 그런 모험을 감수하고라도 떠나야 하는가?
결론이 안 나온다.

 

집에 돌아온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다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 일단 나서자" 라는 결론을 내리고 부랴부랴 짐을 싣고 떠났다.

 

친구들에게 전화 해 피난을 간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나도 상대방도 목이 메여 간신히 " 몸 건강하게 잘 있다가 다시 만날 때는 우리 꼭 파티하자"라고 하는데 마지막 안부처럼 느껴져 비장한 마음에 눈물이 맺힌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피해 우여곡절을 거치며 남편의 거래처 부사장님인 Steve의 별장에 도착한 시간이 금요일 새벽 6시경이었다.

 

평소 두 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우린16시간 정도 걸린 것이다.
힘들었던 이 피난길에 정말 행운이었던 것은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두 군데나 만난 것이다.

 

신은 우리와 함께 계셨다.

 

 

*기름이 없다는 안내문. 수도 없이 우리는 절망에 빠져야 했습니다.



*기름이 없다는 표시로 주입기를 비닐 봉지로 싸 놓았습니다.


 

*얼음이 없다는 말은 그래도 견딜만 했습니다. 피난 중에 수도 없이 'out of ~'를 만나야 했습니다.


 

*기름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공급해 주기 위해 기름통을 가진 사람에게만 팔았습니다. 차의 기름 탱크에 직접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름통이 없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대형 마켓 모든 곳에 모든 통은 이미 다 팔려 버렸답니다.다행히 우리는 통 세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왼쪽에 경찰 보이시나요? 아마 경찰이 없었다면 총싸움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보다 양식보다 더 중요한 게 기름이었으니까요.나중엔 기름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을 빨리 구분 할 수 있었습니다.기름이 있는 곳에만 경찰이 있었거든요.


 

 

*주유소의 가게 였는데 불을 환히 밝혀두고 종업원들도 피난 했더군요. 쓰레기통 앞에 잔뜩 쌓여 있는 쓰레기들이 긴박함을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