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20일 화요일
날씨 채널에서는 줄곧 메이저급 허리케인 리타(Rita)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플로리다 남부의 섬 지역에서
북상하면서 세력이 강해져 플로리다는 물론 텍사스 남부 쪽을 강타하는 제 2의 카트리나가 될 것이라고 한다.
휴스턴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갤버스톤 섬에 사는 사람들에겐 벌써 소개령이 내려져 섬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휴스턴 지역도 이번 금요일엔 피난을 가라고 자막으로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 너무나 불안한 마음뿐이다.
뉴올리언즈의 재앙을
당한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난 일상의 평온함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 지역의 고등학교에선 금요일에 학교 문을 닫으니 등교하지 말라는 방송까지 있었고 한다.
그 방송을 듣고
아직 자연 재해를 당해 보지 않은 철없는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하나, 뉴올리언즈에서 온 학생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이제 겨우 학교
다니게 되었는데 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며 울상을 지었다고 하고 선생님들은 "너희들 또 피난가야겠다"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마트에 가서 필요한 생필품을 좀 사고,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 놓아야 할 것 같으니 빨리 서둘러서 준비 좀 해" 라고 한다.
그래서 월마트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카트가 항상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아 장을 봐서 차에 싣고 있는 사람을 기다려 카트를 끌고 들어갔다.
물을 사야 할 것 같아 사람들에게 치여 가며 물 판매하는 곳에 갔는데 진열장에 그렇게 가득하던 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저쪽에서 수레에 가득 물을 싣고 오는데 물이 도착한지 1분도 안 되어 모두 팔려 나가고 있는 상황을 보니 막연한 불안감이 갑자기
공포가 되어 엄습해왔다.
우리가 라면을 사는 것처럼 이 사람들도 인스턴트 캔 제품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며 사고
있었다.
고기와 야채 종류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다.
평소에 한산하던 주유소였는데 줄을 서서 기름 넣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예정대로 도서관에 영어 공부하러 가야 하나? 아니면 피난 갈 짐을 싸야 하나 ?
뭘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98도까지 치솟은 뜨거운 날씨를 제외하고는 바람도 없는 조용한 하늘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을
정도이다.
태풍의 핵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4년을 살면서 정말 평온하게 휴스턴 생활을 했는데 정말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여분의 기름을 사가려고 기름 넣는 통을 사러 왔습니다. 이미 아침에 모든 제고가 팔려 나가 더 이상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종류별로 수납해 차에 실을 플라스틱 통을 사러 왔는데 다용도로 쓰이는 통은 모두 나가고 없었습니다.
남편이 아직 퇴근을 안 한 시간을 이용해 창문을 테잎으로 붙였습니다. 처음이라 정성을 다해서 안 쪽에는 랩으로 감싸고 유리창이 하나도 안 보일 만큼 감쌌습니다. 목적은 유리가 깨지더라도 파편이 이리저리 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게에 마지막으로 4개 남은 테잎을 사왔기 때문에 저렇게 쓰다간 다른 유리창 못 막을 것 같아 점점 유리가 많이 보입니다.
테잎은 벌써 두 개를 써 버렸고 하다보니 깜깜해져 오른쪽은 못했습니다. 저희 집에 유리창이 엄청 많은데 아직 한참 남아있습니다.
'지극히 미국적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그리운 나의 집으로- 허리케인 리타를 보내고. (0) | 2005.09.26 |
---|---|
휴스턴을 탈출하며. (0) | 2005.09.25 |
어느 주재원 가족의 일상을 통해 본 카트리나. (0) | 2005.09.09 |
수영장에서 느낀 이들의 질서의식 (0) | 2005.07.29 |
더위야! 물렀거라! (0) | 2005.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