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우리반 친구들의 허리케인 후일담

김 정아 2005. 9. 30. 08:53

2005년 9월 28일 수요일

 

6일 동안 임시 휴교에 들갔던 학생들이 오늘부터 다시 학교에 돌아가게 되었고, 문을 닫았던 공공기관들과 각 분야의 영업소들이 정상으로 업무에 복귀하게 되었다.
도시의 전체 기능이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기름이 없어 문을 닫았던 주유소들도 기름을 확보해 우리는 더 이상 기름 때문에 걱정할 일도 없어졌다. 비록 기름 값은 엄청 올랐지만.

 

나도 오늘 정상으로 도서관에 영어 공부를 하러 갔다.
우리 반 학생들 7명중 5명이 여기저기로 피신했다가 무사히 돌아와 우리는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허리케인이 오기 전 마지막 수업은 나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안 나왔고, 그래서 나와 우리 할머니 선생님 두 사람만 했었다.
그 때 선생님은 피난 갈 짐을 트렁크에 싣고 왔었고, 허둥지둥 아무 것도 모르는 내게 그 짐을 보여주며 준비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자기는 아들이 있는 루이지애나 쪽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집에 남으셨다고 했다.
60이 넘으신 노부부가  그 먼길을 장시간 운전할 용기가 없어 그냥 남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루이지애나 쪽으로 가신다는 말을 듣고 내내 걱정을 했었는데 선생님이 무사하셔서 난 너무 기뻤다.

 

 

3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달라스를 35시간, 32시간만에 도착했다는 한국의 세숙씨와 대만의 위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기절초풍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2시간 30분의 거리를 16시간만에 도착했으니 아주 양호하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자기가 당한 가장 최악에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자신처럼 재수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며 말해 준 내용은 이렇다.

 

테네시주 멤피스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곳을 목적지로 삼고 출발했는데 너무나 길이 막혀 진입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다가 결국 차의 기름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겨우 돌고 돌아 기름이 있는 주유소를 발견했는데 차가 너무나 길게 늘어서 있어 차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판단 하에 남편이 기름 통 한 개를 들고 한시간을 걸어서 기름을 사오고 그걸로는 부족해 다시 두 번을 걸어서 갔다 왔다고 한다.

 

차에 기름을 넣는데 4시간 가까이 보내고 났더니 시간이 흘러 도로 한 가운데서 허리케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한 살 된 아이와 그 허리케인을 맞으면서 다시는 살아서 돌아갈 줄 몰랐다고 했다.
다행히 약해진 바람으로 차도 뒤집어지지 않고 식구들 모두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그러나 2박 3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 허리케인을 만나 공포는 공포대로 느끼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말하며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힐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 공포가 밤마다 생각나 식은땀을 흘린다고 했다.

 

도대체 뭐라고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허리케인의 후일담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지만 이렇게 나쁜 상황은 처음 이다.

목적지를 서쪽으로 잡고 갔었더라면, 차라리 피난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겨우 "그래도 몸 성히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라" 고 먹혀들 것 같지도 않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가 특별히 고생했던 것 이외에는 우리 모두 웃을 수 있어 감사했다.

 

 

 

*카트리나 피해 때 뉴올리언즈에 사시는 분이 베튼 루즈에서 받았던 컵라면입니다.

자기네가 받은 것을 저희 집에 나누어 주셨습니다.

비록 수재민은 아니었지만 저 글귀를 보고나니 기운이 생기더군요.

'내가 힘들 때 든든한 내 조국이 뒤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위로가 되었답니다.

지금 저 컵라면을 잘 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