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월요일
거의 10일 가까이 집에서 보내던 아이들이 섬머 스쿨에 가는 첫날이다.
아이들을 태우고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 도로에 들어서는데 길이 장난이 아니게 막혀있다.
한산하던 그 길이 저마다 섬머 스쿨에 가는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차들로 한참 전에서부터 밀려있다.
늦을 것 같아 아파트 관리소 앞에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학교에 들어갔는데 가관이다.
학교 행정이 너무나 성의 없고 어느 것 하나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조그만 입간판 하나 서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안내 표지 하나 없다.
1학년 이하는 식당, 2학년 이상은 체육관이라는 사실을 겨우 알고 서둘러 갔는데 아수라장 그 자체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 평교사들은 가끔씩 너무나 일방적이고 즉흥적으로 학교일을 한다고 관리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적도 있었는데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선진적인 행정이다.
당연히 식당 문 앞과 체육관에는 해당 학년을 써 놓았어야 하고, 각 반 명단을 벽이나 복도에 붙여 놓았어야하고, 식당의 각 테이블에 담임선생님의 이름과 학생이름이 놓여있어야 했다.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넓은 식당에 교사들이 와서 자기 반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많은 학교의 아이들이 뒤섞여 이름이 잘 들리지도 않았고, 조금 늦게 도착해서 아이의 이름을 못 들었다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아이의 이름을 사람마다 다르게 불러 정말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 작은아이를 어떤 사람은 '내연'이라고도 부르고, 어떤 사람은 '나연', 또 그냥 '나'라고만 부르는 사람도 있다.
pre-k, kindergarten의 이름을 다 부른 다음에야 일 학년을 불렀는데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우리 나라의 교무부장쯤 되는지 이것저것 다 살피고 다니다가 다른 아이들이 모두 떠난 다음 가장 늦게 와서 아이들을 인솔해 갔다.
다른 엄마들은 바빠서 아이만 내려놓고 바로 갔는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를 보더니 선생님은 좋은 엄마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8시 반에 시작한다는 수업이, 9시 반이 지나서야 겨우 교실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아직 교실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식당과 강당에서 우왕좌왕 서성거리고 있었고.
내년에는 섬머 스쿨을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차에 탄 아이들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학교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거의 10일 가까이 집에서 보내던 아이들이 섬머 스쿨에 가는 첫날이다.
아이들을 태우고 발걸음도 가볍게 학교 도로에 들어서는데 길이 장난이 아니게 막혀있다.
한산하던 그 길이 저마다 섬머 스쿨에 가는 아이들을 태우고 오는 차들로 한참 전에서부터 밀려있다.
늦을 것 같아 아파트 관리소 앞에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학교에 들어갔는데 가관이다.
학교 행정이 너무나 성의 없고 어느 것 하나 준비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조그만 입간판 하나 서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안내 표지 하나 없다.
1학년 이하는 식당, 2학년 이상은 체육관이라는 사실을 겨우 알고 서둘러 갔는데 아수라장 그 자체이다.
학교에 근무할 때 평교사들은 가끔씩 너무나 일방적이고 즉흥적으로 학교일을 한다고 관리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던 적도 있었는데 여기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선진적인 행정이다.
당연히 식당 문 앞과 체육관에는 해당 학년을 써 놓았어야 하고, 각 반 명단을 벽이나 복도에 붙여 놓았어야하고, 식당의 각 테이블에 담임선생님의 이름과 학생이름이 놓여있어야 했다.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넓은 식당에 교사들이 와서 자기 반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많은 학교의 아이들이 뒤섞여 이름이 잘 들리지도 않았고, 조금 늦게 도착해서 아이의 이름을 못 들었다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고, 아이의 이름을 사람마다 다르게 불러 정말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 작은아이를 어떤 사람은 '내연'이라고도 부르고, 어떤 사람은 '나연', 또 그냥 '나'라고만 부르는 사람도 있다.
pre-k, kindergarten의 이름을 다 부른 다음에야 일 학년을 불렀는데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우리 나라의 교무부장쯤 되는지 이것저것 다 살피고 다니다가 다른 아이들이 모두 떠난 다음 가장 늦게 와서 아이들을 인솔해 갔다.
다른 엄마들은 바빠서 아이만 내려놓고 바로 갔는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를 보더니 선생님은 좋은 엄마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8시 반에 시작한다는 수업이, 9시 반이 지나서야 겨우 교실까지 가는데 성공했다.
아직 교실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식당과 강당에서 우왕좌왕 서성거리고 있었고.
내년에는 섬머 스쿨을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일과가 끝나고 차에 탄 아이들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학교가 정말 재미있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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