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일본 아줌마, 내게 칭찬을 하다.

김 정아 2003. 3. 14. 13:39
3월 11일 화요일
5학년 초에 원석이가 나중에 등록한 까닭에 책이 없이 학교 생활을 했다.

앞집 일본 아줌마에게 우리 아이가 아직 책을 못 받았다고 했더니 여러 날에 걸쳐 오늘은 책을 받았냐고 물어보고 못 받았다고 하면 서점에도 파니 가서 사라고 하며 꽤 지성으로 알려주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드디어 원석이가 4권의 책을 받아 왔다고 했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었다.

이곳의 책은 한국의 교과서와는 달리 거의 백과 사전만큼이나 두껍고 크다.
그래서 상당히 무겁다. 삽화도 많이 들어있다.

일년간을 본 다음 다시 반납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 교과서를 종류별로 구입하려면 거의 1000만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았는데 거의 맞는 말 같다.

어쨌든 아이가 책을 받아오면 첫날에 인스펙트를 해야 한다고 일본 아줌마가 알려 주었다.

A4용지에 여러 질문들을 살펴 체크를 해야한다.

겉 표지가 찢어졌는지 구겨졌는지 크레용이나 연필 낙서는 없는지 등등을 체크해서 학교에 보내면 그걸 학년 끝날 때 교과서와 다시 대조를 한다.

책 속에 대출목록이 붙어 있는데 1년마다 그 책을 본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모든 책들이 무려 4명의 아이들이 4년 간 본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바로 서점에서 사온 것처럼 낙서하나 없이 깨끗했다.

우리는 정말 혀를 내둘렀다.

어쩜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가? 하고.

시민 의식의 투철함이 곳곳에 베여있다.

일본 아줌마가 자세히 가르쳐 주어서 그 때 인스펙트 한 자료를 학교에 잘 제출했다.

우리에게 신경 써 준 것이 고맙고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나에게 작은 선물을 했었다.

오늘 아침 내가 담은 김치를 조금 갖다 주었다.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특히 김치는 자기 옆집이랑 한국 마켓에 가서 거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 먹는 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후에 아이들 맞으러 나갈 때 만난 일본 아줌마는 정말 재미있는 소리를 했다.

자기 남편이 내가 담아준 김치가 너무 맛있다고 했다고 한다.

메모리알 마켓에서 파는 김치보다 맛있으니 앞으로 내가 담은 김치를 사서 먹고 싶어한다는 소리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한국에 있을 때 김치를 안 담는다고 남편에게 엄청난 구박을 받아왔던 나는 미국에 가면 꼭 담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왔기 때문에 성의를 보여야 했다.

그래서 이 나이에 남편 시집살이한다고, 어느 누가 요즘 김치 담아 먹느냐며 종알거리며 마지못해 시작했는데 이런 결과라니!

남편은 내가 김치를 담아 내 놓을 때마다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진다.

"당신 김치 맛 정말 죽인다. 어머니 김치보다 더 맛있어"

" 나 김치 담을 줄 아니까 이제 사 먹어도 되지?"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어디서 사먹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맛있게 먹는데 당신이 담아야지!"

아이구 내 팔자야! 갈 때까지 김치 담는 것에서 못 벗어나겠다.

하긴 집에서 노는데 김치라도 담아야지.

한국 가면 내가 어느 세월에 김치를 또 담아 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