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한가한 전업주부 아줌마, 나는 아줌마란 이름이 좋다.

김 정아 2003. 4. 7. 05:47

4월 1일 화요일

친하게 지내는 이가 오늘 아침을 먹으러 오라고 한다.

남편이 한국에 회의가 있어 10일 정도 출장을 갔다고 한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 놓고 집에 와서 빵과 모닝커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그 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를 하자며 8시 30분쯤 오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잠이 무지하게 많은 편이다.

저녁 9시쯤부터 자기 시작해도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할 지경이니 중학생 되고 고등학생 되면 아침마다 잠과의 전쟁을 치를 것이 너무나 뻔하다.

깨우는데 아침부터 맥이 빠져버릴 정도다.

간신히 깨워서 20분 동안에 세수하고 샤워하고 대충 아침 먹고 스쿨버스 태워서 보내고 나면 하나도 정신이 없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보내고 집안 정리를 대충 끝내고 나도 그 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내가 이렇게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가?'

'이게 현실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 8시 30분이란 시간은 교무실의 내 의자에 앉아 교무 수첩을 펼쳐 하루 일과를 적고 교실로 향하는 시간이다.

아침마다 시간과의 전쟁을 하면서 두 아이 씻기고, 옷 입히고, 밥 먹여 한 손에 한 명 씩 잡고 큰 아이 학교 앞에서 헤어지고, 작은아이와는 유치원 앞에 서서 실랑이를 벌인다.

"너 혼자 올라 갈 수 있지? 엄마 오늘 늦었어".하면
기분이 좋을 땐 혼자 씩씩하게 올라가지만 어떤 날은 "싫어, 엄마가 데려다 줘"하며 바쁜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기껏해야 2-3분을 가지고 거의 매일 아이와 반복하는 일이다.

그리고서 하염없이 뛰어서 학교에 도착하면 어느새 이마와 얼굴엔 땀방울이 맺혀 있고 숨마저 헐떡거려 진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지각은 거의 해 본적이 없었고, 14년의 교사 생활에서도 지각이라는 걸 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어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일찍 출근하는 축에 들었다.
(퇴근은 칼이었다. 학교 일은 엄청나게 빨리 하는 편이어서 옆 사람들이 불안을 느낄 만큼이었다. 그래서 퇴근 시간을 넘기면서 까지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땀과 함께 그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했었다.

그런 내가 8시 30분에 한가롭게, 정말 여유 있게 남의 집에 아침을 먹으러 가다니!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야?

복에 겨운 비명을 질러 본다.



4월 3일 목요일
남편이 집에 셀폰을 놓고 가서 가져다주느라 다른 날 보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이 조금 늦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홍콩 아줌마, 일본아줌마, 태국 아줌마, 베트남 아줌마, 타이완 아줌마, 북경 아줌마들이 모여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로 다 서서 저러고 있는가?'하고 가까이 가니 인터넷에서 복사한 장국영 사진이 나온 기사 한 장을 들고 서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를 보더니"너 장국영 아니? 장국영 죽었데"하며 나를 바라본다.

어제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읽었고 집에 가는 길에 프란세스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근데 너희 나라 사람들도 장국영 아니?"물었더니 역시 그는 전 아시아의 스타여서 각 나라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사람이었다.

많은 아시아 사람들이 어수선한 것을 보더니 선생님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의 소식을 전했더니 자기는 모르는 사람이지만 슬픈 일이라고 한마디한다.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더 행복이 아닌가 싶고, 혹시 자기 정체성을 아직 가지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모방심을 키워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