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만 4개월 동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김 정아 2003. 4. 16. 12:15

6월 20일 목요일

summer camp를 잘 다니던 원석이가 이번 주는 계속 가기 싫다고 한다.

이번 주 주제가 Bible study라서 재미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도 가기 싫다고 인상을 쓰다가 아빠한테 혼나고 억지로 갔다.

그러더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이가 킥 볼을 하다가 손가락이 다쳐 아빠 회사로 전화가 왔다고 한다.

말 안 통하는 나보다는 아빠가 가야 할 것 같아서 아빠가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새끼손가락의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별 치료 방법이 없으니 4주정도 기다려 봐야 한다고 한다.

속상하다.

얼마 전에 얼굴 다쳐 울상이더니 이제는 손가락까지 다치고.

조심성이 많은 아이가 다쳐 혼 낼 수도 없고 제발 별일 없이 붙어 주기만 기도 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는 아이 다쳤다고 다친 이유와 그 이후 응급치료를 어떻게 해 주었는지 자세하게 리포트를 써서 집에 보내 주었다.

하긴 이곳에서 아이들 안전사고 나면 큰일이긴 하지.
한국과는 또 다른 면이다.

오늘로 우리가 이곳에 온지 만 4개월.

여기 와서는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생각하려면 한참이 걸린다.

시간 관념 없이 살아가는데 참 빠르긴 빠르다

아이들은 어지간히 이곳 생활에 적응했는지 이제 누가 보고 싶다고 울거나 그리워하지 않는다.

원석이가 학교 다니면서 몇 마디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가 summer camp에 다니면서 낯선 환경이라 또 다시 입을 닫고 살아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고 있다.

나연이도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이제 6일만 가면 summer school 안 가도 된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이제 나도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법도 배우고 .

각자 벌어 각자 쓰던 생활을 해온 지가 오래라 이곳에 오니 돈 문제가 여러 가지로 걸렸다.

때마다 돈 달라고 하기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또 잊어버리고 그 소리를 못하면 하루종일 답답하고.

어느 날 피아노 레슨 비를 달라고 했더니 언제나처럼 말 한마디 없이 카드 한 장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버린다.

정말 성질 난다.

아니, 카드 쓰는 법은 한번도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냥 놓고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라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짜증내고 따지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당신 내가 이렇게 강하게 안 나가면 혼자서는 절대로 안 하려고 하잖아.
전자사선은 폼으로 샀어? 사전 찾아서 글씨 읽으면 되잖아."

교수법을 못 배워서 이런 소리를 한다.

그리고 뒤에 줄 서있는 사람은 어쩌라고 사전 찾아가면서 돈을 찾아?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해서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하게 하면 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른다.

내가 이웃집 강아지냐?

모든 걸 그냥 몰아 붙이면 되는 줄 안다.
정말 짜증난다.
언젠가 내가 복수할 날이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여기서만은 내가 참아준다.

레슨이 끝나고 피아노 선생님이랑 랜달의 A T M에서 배웠다.
현금 인출하는 방법을.
이제 카드는 내 것 . 내가 다시 돌려주나 봐라.

그리고 남편에게 칭찬도 받았다.
"당신 언제 그렇게 영어가 늘었어?"
야구 연습하러 운동장에 갔다가 나연이반 어떤 엄마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더니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진다.

가까이서 안 들어서 그런 소리를 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단어 몇 마디 열거한 것을 가지고 그런다.
그렇지만 기분은 좋다.

인색하기 그지없는 남편한테 그런 소리도 듣고.

이제 맥도널드 등 fast food점에서 주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맥도널드에 아이들 데리고 용감하게 가던 날 twelve라는 소리를 몇 번씩이나 해도 점원이 못 알아들어 종이에 적어 주는 해프닝을 벌였지만 그 날 이후로 자신감을 가지고 주문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사를 가면 조금 익숙해진 모든 것들과 이별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도 전학을 가야하고 친해진 이웃들을 두고 나도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렇지만 이곳에서 산 4개월이란 시간 보다 바커 사이프러스에서 살아야 할 기간이 더 길다.

일생에 다시 머무를 수 없을 미국의 내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앞으로 4개월 이후의 생활들은 매주 잔디도 깎아야 하고 이 것 저것 정원관리도 해야하고 아파트보다 할 일이 많겠지만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