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시민의식이 투철한 미국인!

김 정아 2003. 1. 11. 01:28

6월 8일 토요일

한국 출장에서 어제 돌아온 남편이 아이들 데리고 나가자고 한다.

힘들 것 같아 "집에 있자"고 하니 매주마다 아이들에게 뭔가 한가지씩은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휴스턴 다운타운 안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지도며 안내문을 찾아 인쇄를 하고 길을 떠났다.

아메리카 야후에 들어가면 내가 어디를 가든, 나의 집 주소와 목적지를 쳐 넣으면 자세한 안내와 걸리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나와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처음 가는 곳이라도 정확하게 찾아간다.

한국처럼 길이 복잡하지 않고 집 앞의 작은 도로까지 다 명칭이 있어 어떤 곳으로 오라고 해도 헤매는 법이 없다.

어느 知人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서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내가 어떻게 가느냐"며 거절하려고 하자 "인터넷에서 지도 찾아서 오면 되요. 여기서 살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 날 결국 큰길까지 마중 나와 있어서 찾아가긴 했다.

늦게 출발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다 보는 것은 무리였고 우선 나비 박물관과 지구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나비를 자연 상태인 공원에 풀어놓고 관람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거나 사람들의 부주의로 죽어나가는 나비들이 수없이 많은 것 같다.

나연이의 옷자락에 나비 한 마리가 붙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지구 박물관은 거대한 화석들과 광석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모은다.

특히 광석들은 너무나 예쁜 빛을 발하며 전시되어있었다.

노란빛 자주색 연두 모든 원색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곁을 떠나기가 싫었다.

그런 광석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보석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자수정 등 오히려 인공적으로 갈고 닦아진 보석들보다도 천연의 광석들이 더 신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미국 경영학부 최고중의 하나라는 ,미국 내 경영평가 전국 5위안에 드는 Rice 대학이라는 곳을 들러 보았다.

흡사 숲 속에 산책을 나온 듯한 기분이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백년은 족히 넘어 보인다.

어찌나 넓은지 빠져 나오는 문이 무려 13개나 되었다.

미국은 뭐든지 넓고 크구나.

대학의 앞쪽의 넓은 잔디마당에서는 그룹사운드의 공연이 한창이다.

이런 야외 공연이 일상인 듯 사람들은 커다란 돗자리에 피크닉 가방에 의자들을 준비해와 너무나 편한 자세로 관람했다.

어떤 이는 자리에 누워서 어떤 이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어떤 이는 비누 방울을 불어대며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광경에 나 조차도 마음 속에 평화가 깃 든다.

정말 이렇게 몇 년 살다보면 한국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6월 13일 목요일
시민의식이 투철한 미국인!

어제 원석이 데려다 주고 영어 공부하러 가는데 어떤 차가 계속 내 뒤를 따라온다.

campbell rode가 복잡하지 않은 도로이고 통행량이 적은 곳이어서 '나랑 행선지가 비슷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니 뒤를 따라온 차에서 할머니가 내려 내 차에 다가온다.

그러더니 유리창을 두드린다. 유리창 문을 조심스럽게 여니 내게 뭐라고 뭐라고 한다.

얼굴 표정이 기분 좋아 보이진 않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차선 위반을 했나? 신호 위반을 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다.

할머니 말이 대충 내가 뭔가를 잘못 했다는 것인데 캠벨 로드 들어와서 only left turn 차선에서 어쩌고 어쩌고 한다.

내가 좌회전 안 할 곳에서 했다는 이야기인가? 특별히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데 .

나 때문에 저 할머니가 위험에 처했었나? 좌회전 신호 받아 잘 왔는데.

모르겠다.

분위기를 보니 내가 잘못하기는 한 것 같아 "sorry"라고 했다.

그러더니 내가 당신에게 주는 충고라고 하고 하더니 차를 몰고 가버린다

웃긴다.

바쁜 시간에 거기까지 나를 쫓아와 충고를 해 주다니.
결론적으로 그 할머니 말이 맞았다.

오늘 자세히 보니 좌회전 차선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제 내가 직진차선에 있다가 좌회전을 한 것이었다.
앞으로는 잘 지켜야지

시민의식이 투철하기는 우리나라가 감히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운전하면서 stop 사인에서 안 서고 가는 차는 단 한 대도 못 봤다.

주차 금지 구역에 주차 해 논 차도 없으며 (물론 땅이 넓고 주차장이 넓으니 굳이 금지 구역에 세울 필요는 없겠지)장애인 전용 주차장을 어기는 운전자도 없다.

그 수많은 차가 움직이면서도 빵빵거리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학원 가는 아침에 I-10이 무척 밀렸다.

뭔가 사고가 난 것처럼 앞뒤가 꽉 막혀 옆으로 빠질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뒤쪽에서 911차가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빽빽한 도로의 차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두 911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있었다.

911은 혼자 신바람 난 것처럼 도로를 질주해 나갔다.

한국에서라면?

일반 도로에서 I-10으로 들어설 때 합류되기 전 빨강과 녹색 점멸등이 있다. 약1초 간격으로 번갈아 켜지는데 빨간 불에서는 stop하라고 되어있다.

난 처음에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무시했으나 다른 운전자들이 모두 정지하는 것을 보고 여기는 저렇게 사소한 것까지 지키는 구나 하며 부끄러워했던 적이 있다.

자주 다니는 길거리에 어느 날 비가 많이 와서 신호등 하나가 고장이 났다.

사거리도 아니고 양쪽 왕복 차선에 주택가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이 하나 나 있는 삼거리에서이다.

글쎄, 우리나라에서라면 운전자들이 거의 신경을 안 쓰고 그냥 지났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운전자들이 옆에서 나오는 차량이 없는데도 정지선 앞에서 모두 한번 섰다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히지 않는 길이 꽤나 길게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순간 나는 거의 감동의 지경에 빠져들었다.
어쩜 저렇게 잘 지킬까?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좌회전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인에게 본받고 싶은 것 중의 하나인 시민의식이다.

어제 그 할머니도 무지 존경스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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