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섬머스쿨 ,그 첫날

김 정아 2003. 1. 4. 01:24

6월 3일 월요일

방학하고서 일주일을 집에서 보낸 아이들이 오늘 각자의 summer school 프로그램으로 다시 정상적인 생활에 돌아갔다.

나연이의 E S L이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나연이 학교에 먼저 갔다.

혹시 아침부터 길 헤맬까 싶어 어제 그제 두 번이나 사전 답사를 했다.

학교 식당에는 미국의 변두리 민족들은 모두 모여있다.

스프링 브랜치 구역의 각 학교마다 영어 안 되어 뽑혀온 초등학생에 그 부모에 동생까지 모두 모였으니 식당이 미어진다.

동양계, 아랍계, 멕시칸, Spanish들 모두 힘없는 민족들이 그래도 아이들 영어공부 시켜보겠다고 젖먹이까지 들쳐업고 스텝들의 지시를 기다렸다.

나연이반 아이들도 두 명이나 더 보았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 아이들 영어가 꽤 되는 것 같던데 부모가 단지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온 것 같다.

스텝들이 식당 겸 강당에 들어오고 단 위에서 뭐라고 뭐라고 영어로 말하더니 다음은 Spanish로 줄줄 이어간다.

영어도 못 알아듣고 Spanish도 못 알아듣고.
예진 엄마랑 나는 한국말 안 나온다고 불평을 토로하고.

E S L이 어차피 영어 못 하는 아이들이 오는데 하려면 일어 중국어 한국어 다 해줘야지 왜 Spanish 만 해줘? 하면서.

미국에서는, 특히 중남미에 가까운 여기 휴스턴이나 마이애미는 영어를 못해도 Spanish만 할 줄 알면 언어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고 살만하다.

특히 마이애미는 영어보다 Spanish가 더 잘 통한다고도 한다.

광고지에도, 학교에서 나오는 가정통신문도 앞면은 영어, 뒷면은 Spanish .

관공서(내가 가본 관공서가 운전면허 시험장밖엔 없지만)에를 가도 영어, Spanish가 같이 쓰여 있다.

월 Mart등 커다란 마켓에서도 안내 방송이 영어와 Spanish 두 가지가 나온다.

또 각 학교마다 스페니쉬 통역관을 따로 배정하고 있어 영어를 모르더라도 통역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중국어 통역관도 배치 할 거라고 하는데 그것은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이 나라안에서 Spanish란 넓은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든든한 골조 같은 존재다.

아파트나 공공기관의 청소원. 주차 관리원 ,세탁업 종사자. 쇼핑센터의 잡다한 일등 단순 노무직들은 흑인이나 멕시칸들과 더불어 Spanish들의 몫이다.

백호주의자들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같이 공생하기를 꺼려하지만 미국을 받쳐 주는 거대한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우리가 사는 이 아파트는 10년 전만 해도 백인들이 사는 굉장히 알아주는 아파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 Spanish, 멕시칸, 흑인들이 몰려들면서 백인들이 서서히 빠져나가 이젠 거의 백인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각 학년 별로 앉아 있으니 담임선생님들이 이름표를 보고 자기 반 아이들을 찾아갔고 얼마 안 있어 나연이도 담임선생님에게 간택(?)되어 즐거운 기분으로 따라 들어갔다.

남의 학교에 와서 서먹해 안 간다고 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 괜찮으니까 오빠 빨리 데려다 줘요" 한다.
서울에서의 예전 모습이 나온다.

당차고 매사에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나연이를 해결하고 원석이 memoryal 드라이브 교회에 가는데 내성적이고 소심한 우리 아들 "엄마 나 가기 싫어. 오늘만 안 가면 안 돼? 나 얼굴 이래서 아까도 아이들이 한참 쳐다봤단 말이야"

얼굴이 멀쩡했어도 아마 다른 핑계를 대 가기 싫다고 했을 아이다.

간신히 달래어 스칼랫 하우스에 인계해 주었다.

나연이 학교처럼 북적거릴 줄 알았더니 웬걸 교실 안에 아이들 12명 정도 앉아있다.

아직 시간이 안 되어 출석을 다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
4, 5학년은 4명이었던가?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한 달에 650불이라는 거금을 내야 되니까.

미국 사람 검소한 것은 진작에 알았지만 인원이 이렇게 적을 줄 몰랐다.

처음이라 멋모르고 이런데 등록했지만 내년엔 무료 프로그램 알아봐야지.

마음이 안 내키는지라 얼굴 빚이 어두운 아이를 혼자 놔두고 오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정말 나라도 싫었을 것 같다.

내가 왜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필드 day에, 스프래쉬 day에, 헬퍼 하느라 백인들 틈에 껴 있다가 얼마나 후회를 했는데.
그래도 어쩌랴 . 참고 견디는 수밖에 .

집에 돌아와 정리를 좀 하고 쉬고 있으려니 나연이 끝나는 시간이 다 되었다.

평상시 학교 다닐 때도 아침에는 school 버스 타는 시간이 일러 내가 데려다 주지만 오후에 데리러 간다고 하면 두 아이가 단호하게 거절해 왔다.

"기름 아까운데 뭐 하러 데리러 와요? 버스 타고 올게요."
summer school하는 동안 오후에 데리러 가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자기는 학교 버스 타고 오겠다고 한다.

그래도 첫날이고 남의 학교라 걱정이 되어 가보았다.
자기는 버스 타고 갈 테니 엄마는 운전해서 버스 뒤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래서 버스 뒤를 따라 가는데 역시나 돌고 돈다.
데이리 에쉬포드가 나오고 버스는 돌아서 저쪽으로 가 버리고 나는 신호를 놓쳐서 따라가지 못했다.

집에 다 왔는데 집에서 기다리자 라고 생각하고 정문 앞에 주차 해 놓고 기다렸다.

잠시 후에 저쪽에서 버스가 오더니 아이 하나를 내려놓고 stop 사인 있는 곳에서 좌회전해서 가버린다.

'아니 여기는 왜 안 오지? 저쪽으로 나오려는가?' 하고 10분 가까이를 기다렸는데 안 온다.

뭐가 잘 못 된 거지?
분명 Perthshire에서 두 번 서게 되어 있는데 왜 안 오는 거야?

발바닥이고 손바닥에 땀이 가득 차 온다.
입술이 마르기 시작한다.

'저 버스가 아니었나? 그러면 나연이가 벌써 와 있을 지도 모르겠네'

차에서 내려 뛰었다.
슬리퍼를 벗어 양손에 쥐고 맨발로 달렸다.
집안에 아무도 없다.

저쪽으로 사라진 버스가 나연이 버스가 틀림이 없다.
조금 전 까지 내가 뒤따라 왔으니까.

눈앞이 깜깜해 진다.

말도 안 통하는 어린것이 집도 못 오고 얼마나 울고 있을까?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하나?
학교로 가 보아야 할 것 같다.

일단 예진 엄마한테 전화해서 우리 집 앞에서 나연이 오나 좀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stop 사인에 서지도 못하고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게 정신 없이 달렸다.

한국말로라도 욕을 막 해대고 따질 생각이었다.

"아이 명찰에 주소는 폼으로 달려 있느냐. 어린것을 이렇게 끌고 다녀도 되느냐'"

단단히 각오를 하고 학교 주차장 앞에 도착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나연이 여기 있는데 지금 어디예요?"
과장님 부인이다.
아니 왜 아이가 거기가 있는 거야?

아이들이 다 내렸는데 마지막까지 두 아이가 안 내렸다고 한다.

게 중에 영어를 좀 하는 아이가 세필드 아파트에 산다니까 다시 데리고 온 것이다.

이미 나는 기다리다 학교로 다시 간 뒤였으니 집에 아무도 없지

그래서 과장님 댁으로 갔단다.
"많이 울었어?" 했더니 "아니요. 엄마 시장 간 줄 알고 아줌마네 갔어요."하며 아주 태평스럽게 말한다.

어른인 나보다 침착하네
오늘, 지치고 힘든 하루였다.

◎E S L : English Second of Langu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