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휴스턴 한인들의 삶

김 정아 2003. 1. 4. 01:30

7월 13일 토요일

미진 엄마가 결국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frea market에서 아는 사람을 돕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노점상이라고 할까?

토요일과 일요일만 문을 여는 대규모 노점상에서 장사를 도왔다.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선풍기 두 대를 돌려가며 더위와 싸움하며 치열한 삶의 현장에 나섰다.

"원석이 엄마 모르시죠? 이곳에 온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해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오늘 미진이 엄마한테 다녀왔다.

엘 드리지 로드를 죽 나서서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꽤 깨끗하고 대규모로 단장되어 있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더워 장사가 안 된다고 했다. 도와 주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전임자 부인께서 말씀하셨다.

'행동 조심하고, 말조심하라'고.

주재원들을 부를 때 돌아서서는 '주재원 것들' 또는 심지어 '주재원××'라고 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이민 온 사람들은 정말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우아하게 살수는 없다.

물론 탁월한 실력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에 진입해 아주 훌륭하게 한국인의 명예를 빛내며 살아가는 소수의 엘리트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언어가 안되고 생활 터전이 한국과는 어마하게 다른 곳에서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무실의 에어컨 밑에서 일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공부 같이 하는 엄마 중에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엄마가 있었는데 한 동안 얼굴이 안 보여 물어 봤더니 분식 집에 취직했다고 했다.

그 실력에 피아노라도 가르치지 웬 분식 집이냐고 했더니 이민 온 사람들이 무얼 따지느냐고. 아무거나 닥치는 데로 해야지 .그거라도 얻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부부 모두 식당의 설거지나 허드렛일에서 시작해 하루도 다리 뻗고 편안하게 살지 못한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가고 어떤 사람은 귀에서 고름이 나와도 한국에서 항생제 가져온 것 먹고 끌다 소리도 안 들리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교육열은 높은데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어느 신문에도 나왔다.

그렇게 힘들게 사는데 주재원들은 토요일 일요일이면 골프 치러 다니고 여행 다니고 해서 교민들을 우울하게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영주 아빠가 이가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잔다는 소리를 듣고 병원에 왜 안가냐고 철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 보험이 없어요. 아마 매달 보험료 내다보면 우리 생활하기 힘들걸요"했다.

이 하나 뽑는데도 보험이 없으면 210불인데 아마 영주 아빠는 더 나왔을 것이다.

이민생활이라는 게 그래도 꿈을 찾아,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소수들의 행복한 결단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 곳에 와서 느낀 그들의 삶은 그저 힘든 현실일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도 미진이 엄마 아빠를 더 좋아하는 남편은 미진 엄마 힘드니까 오늘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라고 야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