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크리스마스 파티

김 정아 2003. 1. 1. 01:16


12월 19일 목요일
sundown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는 날이다.

지난 추수 감사절에는 각자 만든 음식을 가져와 교실에서 간단한 파티를 했고 이번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같이 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파티를 참 좋아하는 나라다.

파티라고 해서 꼭 훌륭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성찬을 먹는 건 아니다.

간단히 마음 맞는 사람끼리 만나 음식 먹고 대화 나누는 걸 모두 파티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파티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우리와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공교롭게 한국인들은 모두 선생님 주위에 자리 잡고 앉았다.

모두 다 선생님과 한 마디씩 주고받기에 정신이 없는데 선생님 왈 "당신은 무척 조용하다"라며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게 웬 창피!

평소에도 주절주절 말이 많이 편은 결코 아니나 내가 정말 조용해서 아무소리 안 하고 있는 것인가?

말을 못해서 가만히 있는 걸 모르고 그런 소리를 들으
니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 시간 이후로 조바심이 나며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언제나 입 열어 완전한 문장 한 번 말 해 볼까?

아무리 내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내가 가장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니 내년에도 열심히 다녀야 겠다.

학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다음주부터 2주간의 겨울 방학에 들어가 1월 둘째 주 개학이다.



12월 26일 목요일
가족끼리 조용하고 오붓하게 성탄절을 보내는 이곳의 문화 때문에 밖에 나가야 더 썰렁할 것 같아 어제는 하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성당에서 같이 예비자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 뒤풀이를 하고자 우리 집에 모였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고, 워낙 사람들을 좋아하는 남편이어서 기꺼이 우리 집을 조촐한 自祝의 장으로 내 놓았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하나씩 해 오기로 했어도 주인 된 입장에서 그 것만 바라고 앉아 있을 수 없어 월요일부터 어머니는 무김치를 담그시고 시골에서 직접 농사 지어 가지고 오신 메밀묵을 쑤고 나는 나물을 삶고, 결과적으로 준비한 것은 많지 않았지만 분주했다.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까지 자리를 같이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가까이 다가감을 축하해 주셨다.

공부할 땐 딱딱했던 분위기가 私的인 자리이어서 인지 부드러워지고 많은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우리 어머님의 한 말씀,
"너 이제 뭐든 척척 잘한다. 한국 오면 많이 시켜도 되겠다"하신다.

옆에 있던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 입이 함박만하게 벌어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음식 만드는 솜씨가 많이 는 것 같긴 하다.

서울에선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 먹는 것도 귀찮고 하는 것도 귀찮아 마지못해 하는데 그런 음식이 맛 있을 리가 없다.

아이가 소풍을 간다해도 김밥을 몇 번이나 싸주었던가?

아무리 노력해도 김밥 속이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고 한쪽으로 몰리다 보니 김밥 다섯줄 싸면 겨우 아이 먹을 도시락 채울 정도여서 짜증만 내다가 나중엔 김밥 집에서 사서 주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열심히 갈고 닦은 덕에 그런 대로 이제 한 줄도 버리지 않고 싸게 되었다.

한국처럼 몇 걸음 옮기면 원하는 걸 다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안 되는 한국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건 너무나 뻔하고,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내 손으로 해 먹는 게 훨씬 빠르고 속 편하다.

그래서 외식이 잦던 한국에 익숙해 있던 아이들이 제발 우리도 외식 좀 하자고 보챌 때도 있을 정도로 우리 가족끼리만 나가서 먹어 본 지가 정말 오래 전이다.

10월 성당의 바자회에서 경품으로 당첨 된 한식당의 20불 짜리 식권을 아직도 못 쓰고 있다.

이 곳에 산지 오래된 한국 주부들은 음식 솜씨가 다들 프로 급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 와서 얻은 큰 소득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