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경하기

범죄인 명단에 오르게 된 황당한 여행

김 정아 2003. 1. 3. 00:34


12월 27,28, 29 금 ,토, 일요일
원래는 시부모님과 함께 L. A에서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캘리포니아 및 서부 일대 여행을 할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들이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비용 문제는 우리 발목을 꼭 붙잡았다.

평소의 두 배 가까운 비행기 삯에 그것도 6명이나 되는 대가족이고 패키지 상품도 정말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 수 없는데 큰맘 먹고 모시고 갈까 하다가 이곳도 따뜻하고 아들 사는 곳에 더 있고 싶어하셔서 주말마다 가까운 곳을 다니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멕시코 국경 가까이 있는 Big Bend라는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 4일이나 되는 연휴를 이용해 가볼까 하다 남편이 피로에 절어 있었고 또 누구는 Big Bend 볼게 없다고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10시간 넘게 걸리는 Big Bend를 부모님 핑계삼아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Big Bend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국립공원이라 했다.

금요일 저녁 직원 가족들과 송년회 겸 저녁 식사를 하고 8시 20분에 집을 출발해 11시 30분 넘어 샌 안토니오의 예약한 Inn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8시30분 Big Bend를 향해 떠났다.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만 계속 되었다.

길가의 피크닉 에어리어에서 인스턴트 국을 끓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끝없이 운전해 드디어 오후 4시쯤 국립공원 빅밴 입구에 도착했다.

다 왔다는 생각을 하며 입장료를 내고 들어섰는데도 이정표에는 아직도 38마일이라는 숫자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했다.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얼마나 멋진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대를 하면서 1마일, 1마일 숫자를 줄여갔다.

양쪽 길가엔 지난 8월 애리조나 주와 유타주에서 보았던 '모뉴멘트벨리'와 비슷한 풍경이 이어졌다.

사막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바위와 ,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갖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 작은 언덕, 그리고 끝없이 펼쳐있는 선인장과 사막 식물들을 보며 부모님들은 한없는 찬사를 보냈으나 나에겐 그다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미 그 보다 더 장대한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드디어 0 마일에 도착하니 관광센터가 있었고 거기엔 작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그 옆엔 우체국이 있었다.

기념품을 하나 사고 차에 올랐다.

"이제 어디로 가요?"

"어디 가긴. 집에 가지 .다 보았잖아 " 한다.

"아니, 농담하지 말고 어디가 더 멋있다고 하던가요? 이쪽으로 가요. 아니면 저 쪽으로 가요? "

"다 보았다니까. 입구에서부터 양옆에 펼쳐진 바위랑 작은 언덕 안 봤어? 그거 보려고 왔지"


기∼∼∼∼가 막힌다.

이렇게 황당하고 어이없는 여행을 하려고 그 먼데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겨우 이거 보려고?

"저 쪽 아래 내려가면 강도 있고 멋있는 산도 있는데 우리 여권을 안 가지고 와서 불안해서 못 가겠어. 큰 일 당하지 말고 우리 이쯤에서 돌아가자"

하긴 Big Bend 들어오기 5시간 전쯤에 검문을 당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를 적발하느라 검색을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집에서 출발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집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신분증을 요구하는데 나와 남편이외의 5명의 신분을 증명하는 아무 서류가 없었다.

당장 불법 체류자로 몰아 연행을 당해도 어떤 방법을 취할 수 없는 상태이다.

차를 한 구석에 세우라 해서 세우고 나니 다행이 부모님과 조카의 비행기표가 있어 보여주었다.
컴퓨터를 두드려 대더니 아무 범죄사실이 없었든지 마음 좋아 보이는 한 군인이 가라고 하며 다음엔 꼭 여권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다.

그런 사실을 상기하고 나니 더 가고 싶은 생가도 없어졌으나 남편은 또 걱정이다.

나가는 입구에 또 다른 검문소가 있었는데 제대로 통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다.

조심스레 검문소에 다가가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인은 우리를 마치 범죄인 다루듯 험악하게 취급했다.

아까도 통과시켜 주어서 왔다고 하니 말꼬리를 잡고 문제가 있었으면 바로 돌아갔어야지 왜 왔느냐.

여기서 무엇을 했느냐 며 큰 소리로 꾸짖듯 말하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고 추궁을 하니 남편도 더 이상 대꾸를 못하며 침통한 표정이다.

그 군인은 우리를 세워 놓고 사무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면 벌금에, 30일 구속이라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는 제발 별일 없이 휴스턴에 돌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 다른 군인이 나오며 컴퓨터에 입력해 놓았으니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즉시 구속이라며 안전운전해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와 남편은 미국 범죄인 명단에 오른 것이다.

어떤 등급인지 모르겠으나 끔찍하다.

이렇게 해서 검문소를 통과하고 한참을 가다보니 밤은 벌써 어두워지고 시간은 9가 넘어 있었다.

샌 안토니오를 향해 가다가 '소노라'라는 작은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휴스턴에 돌아왔다.

빅 밴 !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돈준다고 가라해도 절대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컴퓨터에 입력 된 사항은 언제까지 유효한 것인지 모르겠네.

우리가 여기 사는 동안은 불편한 일로 작용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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