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수님, 성모님

세례를 받다.

김 정아 2002. 12. 28. 02:49


12월 15일 일요일

거의 6개월간 일요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떨며 예비자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주님에 대한 존재의 인식이 강하지도 않았고 신앙심이 깊어지지 않았지만 오늘 드디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세례를 받았다.

이런 마음으로 꼭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많이 망설였고 고민했지만 믿음이 한 순간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가면서 더 깊어 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불교 학생회 활동을 무지하게 열심히 했다.
科모임은 안 나가더라도 써클 모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나갔고, 과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써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해서 가끔 과 친구들이 "너는 써클 다니러 대학왔니?"라는 핀잔을 받을 정도였다.

1박 2일 수련회는 물론 3박 4일 ,그리고 일주일간 이어지는 전국 사찰 순례라는 강행군도 했었다.

3학년 때는 써클 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 전국적인 대학생 연합 축제에도 참가해 많은 대학생 법우들을 만나기도 하고 교내축제에 10.27 법란을 연극화해 무지막지한 학생처에 끌려가기도 했었다.

대학생활 내내 나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고 정말 많은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보덕심이라는 수계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영원한 불교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 내가 다시 천주교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이민생활 또는 단기간의 해외 생활에 종교는 너무나 필수적인 선택이다.
어렵고 힘든 외국생활에서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종교단체뿐이다.

남편은 이전에 어떤 종교도 가져 본 적이 없었지만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의 전 이력을 존중해 절에 다니자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禪院이라는 이름의 작은 절에는 낯선 환경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아무런 도움도 되어 주지 못했다.

아이들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고 신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은 층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믿음이라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 하루 빨리 이 사회를 알아가고 아이들이나 나나 혼돈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문제였다.
많은 고민 끝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차선의 방법을 택하는 방법이었고 , 그 일환으로 성당을 다니기로 한 것이다.

남편은 나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으로 성당의 천주교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내 자의식 속엔 불교에 관한 미련이 남아 있다.

남편은 세라피노란 이름으로, 나는 세라피아란 이름으로 원죄를 씻고 다시 태어났다.

세례명을 뭘로 할까 많이 망설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닭살이 돋긴하다.

평소엔 그렇게 아옹다옹하면서 이름을 세트로 맞추는 것도 좀 우스워 남편에게 다른 이름으로 지으라고 해도 굳이 자기도 그 이름이 좋다고 바꾸지 않는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믿음이 올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당에 다니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내가 선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부분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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