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수님, 성모님

54일간의 긴 묵주기도를 마치며.

김 정아 2003. 8. 5. 00:11

7월 20일 일요일

54일간의 긴 묵주기도를 오늘 드디어 끝냈다.

그간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난 5월 남동생의 위암 선고와 더불어 우리 가족 모두는 거의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했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이미 오래 전 우리 남매는 50세도 안된 젊은 아버지를 위암이라는 병으로 우리 곁에서 떠나 보내야 했다.

우리 오 남매 중 가장 맏이인 내가 대학 1학년에 입학한 직후였으니 어머니의 고생이야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다섯 자식 모두를 대학 공부 다 마치게 하기까지 그야말로 뼈가 닳아 없어질 지경으로 고생하심을, 내가 결혼해 아이엄마가 되니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큰아들의 위암 선고는 감히 상상도 안 될 만큼 위협적인 고통이었을 것이다.

동생도 동생이지만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지나 않을까?

무슨 일 당하는 건 아닌가?

휴스턴에 앉아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것인가?

한국에 가 봐야 되는 건 아닌가?

맞벌이하는 동생 부부의 아이도 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은데 내가 돌봐야 되는 건 아닌지 ...

그러나 한국에 간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여러 가지 것들이 걸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묵주 기도였다.

처음 며칠간은 눈물 때문에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신앙심이 그다지 깊지도 않은 내가 오로지 묵주기도에 매달려 간절히 빌고 빌었다.

천만 다행히도 동생의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수술 전 방사선 치료 등 항암 치료를 해야 될 지도 모르며, 임파선에도 암세포가 전이되었을 지도 모른다던 병원 측의 말과는 달리 아주 초기증상이라 위의 삼분의 이 정도의 절개에 그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해서 동생의 안정적인 수술과 회복소식을 듣게 되면서 간절히 매달리던 묵주기도의 마음이 느슨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플로리다 여행을 가면서도 하루 분의 묵주기도라도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비행기안에서, 차안에서, 또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기도부터 했다.

뭔가를 정해진 시간에 하루도 잊지 않고 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뒷부분에 올 수록 내 마음이 좀 간절하지 않았더라도 아마 주님은 나의 이런 정성만은 어여삐 여기시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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