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그리고 수술

김 정아 2002. 11. 17. 10:36

5월 31일 금요일
남편은 오늘 서울 출장 길에 올랐다.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남들은 임기 끝나기 전에 서울 간다는 것을 꿈도 못 꾼다던데 6개월만에 서울도 가고.
게다가 미국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게임도 본다고 하니 대박이 터졌다.
부모 있는 서울에 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침에 사무실 나가면서 한 마디 툭 던지고 간다.
"당신이 나 공항에 태워다 주어야 되!"
아니, 내가 공항까지?
여섯 번이나 공부하러 간 교회도 못 찾아가서 헤매고 하다 못해 나연이 원석이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는 데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도 못 찾아서 헤매고 두 달도 넘게 다닌 성당도 못 찾아 헤매어서 나의 아이큐를 의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그렇게 그렇게 먼 공항을 나한테 데려다 달라고?
나하고 10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나를 그렇게 모르나?
온 몸이 쭈뼛쭈뼛 머리칼까지 곤두서는 느낌이다.
내가 못 가면 다른 대안이라도 세워주어야 할 것 같아 택시 회사에 전화 해 봐도 전화도 안 받는다.
남편 차를 공항에 주차시켜놓고 가라고 할까?
일주일이 넘으니 주차비가 엄청 나오겠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설마 정말로 나한테 공항까지 가자고 하진 않겠지?
나를 아는데 자기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지?
아니야, 나 훈련시키려고 정말 가자고 할 수도 있어. 지독한 구석이 있잖아.
마음 속에 온갖 잡념들이 가득하다.
어지간한 거리여야 배짱이라도 갖지
혹시 길을 잃었더라도 말이라도 통해야 방법을 강구하지
혼자 생각 생각하다 지쳐 될 대로 되라 하고 포기하고 있는데 집에 돌아와서 "당신 준비 다 되었지? 가자!" 한다.
더 이상 피할 수 가 없구나.
'아, 주님 제가 오늘 안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상 사태에 대비해서 핸드폰과 여러 사람들의 주소록과 두둑한 현금과 아이들 먹을 간단한 과자와 음료수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차에 올랐다.
두 아이까지 긴장시켜가며 길을 외우게 했다.
공항 가는 길은 의외로 쉬웠다.
Belt way 8만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휴스턴으로 돌아올 때 Belt way 8 들어가는 길과 Belt way 8에서 빠져 I-10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깜빡 잘못 들어서면 모든 게 끝이다.
갈려 나가는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고가도로에 또 고가도로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도대체 엄두가 안 날 것 같다.
남편이 자세하게 길을 가르쳐 주고 공항에 도착해서 유턴해서 Belt way 8들어가는 길까지 연습하고 공항에 다시 도착했다.
남편을 내려주고 마음만 긴장되어서 잘 갔다오라는 소리도 제대로 못하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길을 운전해 나섰다.
Belt way8까지 제대로 들어섰다.
이제 이 길만 죽 타고 가면 되는구나.
비가 와서 톨게이트의 자동센서가 고장이 났는지 사람이 나와서 돈을 받고 있었다.
'이런 단순 노동은 모두 흑인들이 한다니까' 속으로 제법 여유를 부려가며 미국사회의 평도 해가면서.
그런데 50분쯤을 달렸는데도 I-10내려가는 길이 안 보인다.
이쯤이면 나와야 되는데 왜 안나오지?
70마일로 달렸으니 거의 120Km에 가까운 속도니까 나와야 되는데.
내가 더 왔나?
원석이에게 물어봐도 좀 이상하다고 한다.
멀리에 표지판이 보인다 .
다운타운이라고 써있다.
다운타운하고 또 뭐라고 써있으면 거기로 빠지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갔는데 아뿔싸 또 하나가 오스틴이네?
오스틴이 아니고 샌 안토니오라고 한 것 같은데 길을 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굽이굽이 내려가는데 나연이는 태평하게 자고 있고 원석이는 뒤에서 엄마 길 잃어버렸다고 울고 있다.
난감했지만 오히려 담담해지기도 했다.
'유턴해서 다시 가면 되지 뭐' 해서 한참을 Belt way 8길을 찾았는데 그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여기저기 갈려 나오는 길들이 하도 많아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간다.
한참을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Belt way 8 표지판이 눈에 띈다. 그
런데 사우스 웨스트 이스트 노우스 중에 어디로 들어가야 되냐?
길가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사람이 있었어도 물어 볼 수도 없었겠지) Belt way 8은 찾았으니까 일단 아무데나 들어가서 안 되면 다시 나오자.
배짱으로 한참을 달리는데 영 이상하다.
아무래도 공항 쪽으로 다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린 스포인트 다음에 달라스가 나온다.
아까 공항 갈 때 눈 여겨 보았던 표지판이 그대로 나온다.
원석이도 자꾸 공항 쪽이라고 한다.
다시 빠져 나와서 유턴을 해 올라와서 달리는데 톨게이트가 나온다.
돈 받는 사람이 아까 그 흑인이다.
이 길이 맞다는 이야기다.
안도의 한숨이 쏟아진다.
원석이도 너무나 기뻐한다.
이제 3차선 타지말고 2차선으로 죽 가자.
한참을 가다보니 아까 그 마의 오스틴이 나온다.
아찔하다. 여유를 가지고 보니 고가 다리가 일곱 여덟 개가 얽혀 있다.
누구에게 인지 모르지만 기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만큼만 헤매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가서 톨게이트에 다시 동전을 집어넣고 하염없이 가다 보니 드디어 다운타운 그리고 샌안토니오 표지판이 나온다.
통행료를 두 번 낼 때까지 빠져나가지 말라고 했으면 더 쉬웠을 걸.
천천히 돌아 드디어 I-10에 내려왔다.
여기서부터는 내 구역이지?
집에 돌아와서는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버린다.
우리 남편은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 ?
마누라 길 눈 어두운 것 알고 수시로 전화해서 확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되어 길 잃어 버렸다는 원석이 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고 자기도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을 것이다.
그래도 차분하게 이것저것 코치를 해주어 내가 마음이 편했다.
오늘 안에 집에 돌아왔다는 게 감사하고 이제 어디서 길을 잃더라도 절대로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수백 Km떨어진 전혀 가 본적 없는 낯선 곳에서도 집 찾아 왔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란 말인가!
돈으로 살수 없는 이 당당한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조금 든다.
혹독한 시련을 거쳐 날 일으켜 세워준 것에 대한 감사.
지옥 끝에서 살아온 느낌!
오늘 잠자다가 고속도로에서 헤맨 꿈을 꾸지나 않을 나나 몰라.


10월 29일 화요일
닥터 니콜이 알려준 병원을 찾아 5시40분쯤 어스름 새벽길을 나섰다
휴직하고 있는 이 시기에 수술 할 기회가 생겨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먼 땅에서 새벽에 나가 수술하려면 얼마나 떨리겠냐?
날씨마저 추운데 아침에 미음이라도 한 숟가락 꼭 떠먹고 나가거라"하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맞는 말인 것 같아 아무생각 없이 스프를 끓여서 먹었는데 아뿔싸!
아무것도 먹지말고 오라고 했단다.
수술 걱정이 아니라 먹은 게 걱정이 되어 너무 불안했다.
옆에서 남편도 엄청 걱정이다.
수술을 안 시켜 주면 어쩌지?
의사가 분명히 물을 텐데 어떻게 대답하지?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병원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토해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화장실을 찾아 문을 잠그고 손가락을 넣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나니 눈물이 가득 고이며 마음이 편해졌다.
수술은 다니던 병원이 아니라 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장소를 빌려 수술을 한다.
그래서 그 병원에 오는 사람은 모두 다 수술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한 눈에도 어디 많이 아픈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여러 명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어디 아파서 수술하러 왔을까?'라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것 같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2층에 올라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간호사가 임신진단시약을 꺼내 내게 테스트하라고 한다.
'난 아니다'라고 했는데 모든 가임 여성에게는 필수 규정이라며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병원에 마취의사, 정형외과 의사, 이비인후과가 와서 각자 따로 따로 자기 할 일을 하고 나간다.
링겔을 꽂고 있으니 마취의사와 정형외과 의사가 와서 악수를 청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막상 링겔을 꽂고 의사까지 오가자 긴장이 되기 시작하며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수술시간이 되어 방에 옮겨가자 마취의사가 링겔의 호스에 바늘을 꽂음과 동시에 전신마취 상태에 돌입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수술은 끝나 있었고 머리엔 하얀 붕대가 둘려져 있었다.
네시간을 수술실 밖에서 기다린 남편이 가까스로 눈을 뜬 나를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다정한 손길로 토닥거려 준다.
마취가 풀리면서 생살을 도려낸 부위들이 욱씬거리고 특히 일어날 때, 누울 때 귀 부분이 너무 무겁고 아팠으나 두려움도 없어지고 마음은 많이 홀가분해졌다.


*아파서 누워 있는 것도 힘들지만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게 더 힘들어 컴퓨터 앞에 앉아 가까스로 견디며 몇 자 적었습니다.
누워있지 않고 벌써 일어났다며 남편에게 무진장 잔소리 들어가면서 엄청난 오타를 내 가면서 썼습니다.
내용의 앞뒤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