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5일 토요일
우리 슈가가 이제 조금 안정을 찾은 것 같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슈가를 어떻게 할까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친구 화영이 한달이던 두달이던 슈가를 기쁘게 맡아주겠다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아무 걱정없이 맡기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사태가 생겨 버린 것이다.
처음 일주일간은 화영이 아이들도 방학이어서 슈가랑 잘 놀아주고 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일요일에 성당을 가야해서 세 식구가 모두 집을 비운 사이에 슈가가 아주 큰 일을 내 버린 것이었다.
자기집도 아닌 곳에서 세 명 모두 같이 밖으로 나가 버리니 너무 무서웠던지 이방 저방 다니면서 시끄럽게 짖어대고 카펫을 물어 뜯고 블라인드까지 피가 묻어 날 정도로 갈갈이 찢어 버리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관리소에 신고를 해 버려 결국은 24시간 내에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해 있는 친구에게 지난 번에 맡겼던 개 호텔 전화번호를 주고 거기에 좀 맡겨 달라고 했다.
전화를 했더니 요즘 휴가철이라 슈가를 받아줄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도 한국에 나와 있던 상태였으니 서로 안절부절 못 하다가 윤지네 집에 전화를 해 며칠 만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단독주택이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여전히 스트레스에 절어 짖어대고 가구까지 갉아 놓았다는 것이다.
남편이 출장을 마치고 휴스턴에 돌아가 삼일 정도 후에 다시 페루, 칠레 출장을 떠나야 해서 다른 개 호텔에 전화를 여러 곳을 해 보았어도 빈 자리가 없고, 설령 맡아주겠다는 사람이 있다해도 섣불리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일본에 있는 나한테 한 밤중에 전화를 해서 도대체 슈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불같이 성질을 내는 것이다.
도대체 일본에 있는 나한테 어쩌라고?
여행이고 뭐고 다 취소하고 휴스턴으로 달려오라고?
전화 벨 소리 한 번에도 잠이 깰만큼 무지하게 잠귀가 밝은 친정엄마, 남동생, 나까지 깨어서 아침이 될때까지 1분도 못 자고 한숨만 들이쉬다 내쉬다 기분은 엉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휴스턴에 있는 사람들의 전화 번호는 모두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데 그 전화도 한국에 놓고 왔으니 나로서도 어떤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다가 수첩에 누구 번호가 있을까 뒤적이다가 손뼉을 쳤다.
우리 앞집의 8학년 한국 아이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아 그 밤에 국제전화를 걸어 하루에 세번씩 우리 집에 가서 슈가 산책시키고 좀 놀아주면 하루에 10불씩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쳐서 주겠다고 했더니 마침 올 여름은 시간이 많다고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해서 안도의 숨을 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 하는말이 그 아이가 너무 어려 불안하다는 것이다.
참, 또 기가 막힌다. 아무 대안이 없으면서 어려서 안 된다니! 나연이보다도 큰 아인데 어려? 짜증이 팍 밀려왔지만 내가 참기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놓았으니 그 다음은 당신 맘대로 하라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은 자기도 어떤 방법이 없으니 그 아이한테 부탁하고 출장을 떠났다.
그 아이한테 전화를 해서 잘 있는지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행여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윤지 엄마가 어린 아이한테 슈가를 맡겨 놓고 자기도 마음이 안 편하다고 그 먼거리에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우리 집에 와서 슈가와 놀아주고 가고 눈에 안약을 넣어 주는 수고로움도 마다 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특히나 슈가 문제로 한달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슈가 때문에 정말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어 면목이 없기도 하다.
이제 슈가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어디 가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는 윤지 엄마 말처럼 혹시나 해서 잘 살펴 보는데 이 녀석이 우리 곁에서 떠나질 않는다.
또 혼자 두고 나갈까봐 우리가 걸어다닐 때마다 고개를 치켜 들고 쳐다 본다.
당분간은 이 녀석 때문에 성당 가는 날도 한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녀석이 졸렸는지 사진 찍자고 해도 그냥 퍼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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