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박완서님의 '그 가을의 사흘동안'을 읽고.

김 정아 2008. 2. 10. 05:11

2008년 2월9일 토요일


난 어수룩한 변두리의 주택가에 산부인과 의원을 개업했다.

건물의 주인 황씨의 딸이 강간당해 사생아 낳은 것을 도와 주며 처음으로 산부인과 의사로서 일을 시작한다.

정상 진료비의 몇 곱절의 현금을 받고 그 딸이 낳은 아이를 그가 주워 온 업둥이로 키우는 것에 눈을 감아 주었다.

 

나는 그 동네를 감도는 화냥기에 주의를 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분만대 같은 것은 처음부터 설치 하지도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소파 수술을 했고 , 소문은 차즘 나기 시작해 소파 수술 전문의로 이름을 퍼트리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한 태아가 한 면을 이루고 한 읍을 이룰 만큼의 수도 더 된다.

 55세까지만 소파 수술을 하고 은퇴하기로 했는데 마침 그 동네 모든 건물들이 헐리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어도 서운 할 것이 없었다.

 

난 그때까지 많은 돈을 벌어 노후 걱정이 하나도 없고,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편히 돈을 쓰면서 사는가가 더 중요했다.

그렇게 동네가 헐리기 6개월전 쯤부터 이상한 생각 하나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이 의원을 정리하는 날까지 딱 한 번이라도 살아있는 태아를 받아보는 소망을 간직하게 되고 그 열망이 갈 수록 강해 지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웃집 할아버지의 며느리의 남산만해진 배를 보고 받아 보고 싶은 소망을 말했는데 “ 내가 인간 백정의 손에 손주를 어떻게 맡기느냐” 는 가혹한 말을 듣고 말았다.

 

이제 그 가을에 3일만의 시간을 남겨 두고 있었는데 소녀 하나가 들어왔다.

강간당하고 임신한지 7개월이 넘는 산모였다.

수술하기가 어렸웠지만 무사히 끝내고 산모를 돌려보내고 무심결에 아이를 엎어 놓지 못했는데 아이 우는 소리가 가늘게 들려와 정신을 차려 살려 보겠다는 소망 하나로 아이을 안고 종합병원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린 생명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 손에서 죽게 된다.

난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새 집을 향해 걸어간다.

 

*돈을 많이 벌어 노후 걱정을 안하고 살수 있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해도 그렇게 번돈이라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어떻게 돈을 버는 가도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더군다나 사람의 목숨을 없애가면서 버는 돈이 귀할 것 같지도 않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해도 새 생명을 받아 보지도 못하는,오직 소파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것에는 기분이 팍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