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4일 금요일
내가 사는 휴스턴은 텍사스의 남부이다.
아래쪽으로 멕시코 만이라는 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고 늦은 3월부터 여름이 시작되어 10월까지 한국과 비교 할 수 없는 뜨거운 날씨가 지속된다.
겨울이라 해도 아주 추운 며칠을 빼고는 혈기 왕성한 아이들은 반 팔을 입고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일교차가 크지 않아 한국처럼 예쁜 단풍을 보기도 어렵고, 우리 집 정원의 단풍 드는 나무도 이제 겨우 조금씩 붉은 빛이 돈다.
따라서 이곳에서 눈을 보기란 이상 기변이 아닌 한 아주 기적 같은 일이다.
혜나는 지금 9살이지만 휴스턴 밖을 떠나 본 적이 없어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손으로 만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겨울 맘먹고 눈을 보여 주기 위해 아이들 데리고 덴버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제니네도 이곳에 온지 12년이지만 한번도 내리는 눈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이 휴스턴에 눈이 내린 것이다.
골프장에 간 남편이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는 전화를 했을 때 난 "무슨 눈이 와?" 하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밖을 나가 보니 정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잔디밭에도, 지붕 위에도, 차 위에도 하얗게 쌓인 눈을 보고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장갑을 찾고 목도리를 찾아 두르더니 눈을 뭉치고 뒹굴며 신이 났다.
밤인데도 동네 아이들이 많이 나와 여기저기서 괴성을 지르는 소리가 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들었다.
뉴스에도 휴스턴에 눈이 내리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 대고 있었다.
성탄 즈음에 눈이 온 게 1918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오늘은 성탄 이브다.
때맞추어 내려 주는 눈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곳에 온지 3년만에 눈을 구경하는 우리도 억세게 운이 좋은 것 같다.
*배경에 불처럼 번져 보이는 것은 성탄 장식용 등입니다.
*12월 말인데도 아직 푸른 우리집 정원의 나무입니다.
'지극히 미국적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최고의 로데오 경기 (0) | 2005.03.30 |
---|---|
미국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0) | 2005.01.14 |
옥수수 농장에서 만난 가을. (0) | 2004.11.11 |
영어반 완전교체! 할로윈 사진도 있어요. (0) | 2004.11.01 |
미국식 결혼식은 이렇게 하는가? (0) | 2004.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