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4일 금요일
요즘 나연이는 손톱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얼마 전에는 매니큐어를 사달라고 해서 색별로 네 개를 사주었고, 어제는 인조손톱을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다.
인조손톱에 공을 들여 한참을 풀을 발라 붙이더니 너무나 만족한 모습으로 기분 좋아하고 있다.
나연이가 나를 닮지 않아 참 좋은 점이다.
가꾸고 꾸밀 줄 알고 멋 내는 아이가 오히려 더 고맙다.
예전에 친정엄마는 나의 외모를 보고 어지간히 잔소리를 해 댔었다.
“넌 안 예쁘니까 좋은 화장품과 예쁜 옷으로라도 꾸며야한다” 고 늘 상 같은 소리를 했었다.
“넌 외모가 안 되니 대학이라도 들어가야 그나마 시집이라도 간다”(이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말씀)
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이 났을 때는 “따분한 한문과목인데 옷이라도 이쁘게 입고 다녀야 학생들 실증 안 낸다. 같은 옷 입고 다니지 말고 매일 옷이라도 바꿔 입고 다녀라”
교직 생활을 외지에 나가 했으니 평소엔 집에 못 가다가 방학이 되면 한 달씩 시골집에 머물다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방학이 되어 시골집에 온다고 하면 엄마께서는 버스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리시곤 했었다.
어느 여름인가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운동화를 신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잘 왔느냐”는 말도 없이 머리가 사내 마냥 그게 뭐냐, 옷이 없어서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왔느냐, 화장은 왜 안 하고 왔느냐, 구두 한 켤레가 없어 운동화 끌고 왔느냐며 잔소리를 시작해 며칠 후까지 계속 같은 말씀이셨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며 7시간도 넘게 버스 타고 지칠 대로 지쳐서 오는데(포천에서 정읍까지) 그럼 치마입고 분단장하고 오느냐고 나도 맞받았다.
왜 그렇게 내 외모에 집착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도 하도 세뇌를 받아서인지 교직에 있을 때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달력에 작은 글씨로 입은 옷을 써 놓기도 했었다.
딸 셋이 똑같이 엄마의 그런 기대치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지만 나처럼 동생들을 들볶진 않으셨던 것 같다.
워낙 큰 딸인 나에게 질려서 동생들에겐 간혹 아주 가끔씩만 그러셨던 것 같다.
3년 전쯤에 휴스턴에 오셨을 때 엄마의 그런 성격을 알기에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공항에 나갔어도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왜 그렇게 촌스러운 옷을 입고 나왔냐, 너 보고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또 한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딸들에게 그런 잔소리를 할 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으시다.
설령 내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한국에 갔다 해도 아무 말씀 없으실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잔소리를 들었을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아픈 동생으로 엄마의 마음도 피폐할 만큼 피폐되어서 그런 것까지는 신경도 못 쓰실 테니까.
이제야 난 엄마의 그 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내 딸이 남 앞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만족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쁨도 어떤 것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엄마에게 더 좋은 딸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세월이 지난 다음에 이렇게 알아지니 참 아쉽다.
그런 면에서 나연이는 참 효녀이다.
스스로 알아서 가꾸고 꾸밀 줄 아니 내 엄마처럼 딸에게 잔소리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저렇게 긴 손톱을 부치고 기분 좋아하고 있습니다. 저런 손톱을 하고도 공부가 되는지 궁금하지만 말리지는 않는답니다. 아빠는 아직 모르고요.
아빠가 알면 뭐라고 한 소리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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