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최인호님의 '깊고 푸른 밤'을 읽고

김 정아 2007. 1. 11. 01:00
 

2007년 1월 10일 수요일

이상 문학상 수상집을 읽었다.

워낙 단편을 좋아하지 않아 몇 편을 골라 읽었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글이 최인호님의 ‘깊고 푸른 밤’이다.

예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고,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한때 인기를 누렸으나 마리화나의 유혹으로 벗어나지 못한 가수 준호와 신문에 소설을 쓰는 ‘그’가 LA에서 만나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준호는 마리화나를 피우다 국내에서 가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 도피 생활을 떠난다.

수중에 몇 푼 있던 돈으로 월세 방을 얻고 여전히 마리화나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해 피 같은 돈을 마리화나로 바꾸며 인간쓰레기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마리화나는 그의 빵이었고, 술이었고, 물이었고, 피였다.

LA한인 사회에서는 그를 도덕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구제할 수 없고,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더 이상 그를 상종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비자기한도 연장이 안 되어 불체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는 모든 것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소설에도 , 활자화된 문장에도, 신문에도 분노하는 그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잠시 미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곳에서 동생의 친구인 준호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준호와 그는 명함에 적힌 이름하나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 그 집에서 마리화와  술에 찌든 하룻밤 파티를 벌인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다시 LA로 돌아오게 된다.

주머니에 가진 돈이라고는 기름값을 할 수 있는 단돈 몇 십달러가 전부였다.

그들은 운전하는 도중 각각 자신의 생각에 몰두 한다.

아무 희망이 없는 준호는 엔진이 타 버린 차 앞에서 울부짖는다.

“ 한국에 돌아가겠어. 남의 땅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구할 수도 없어”하면서 난폭하게 눈물을 닦아 낸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피워 본 적이 없는 마리화나를 입속 가득 물고 깊게 빨아들인다.

극심한 현기증이 일며 환각 상태에서 그는 즐겁고 유쾌하고 슬퍼지며 마음속에 끓어오르던 분노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철저하게 패배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분노가 소멸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원한도 증오도 적의도 미움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분노도 없고, 이제는 돌아가 누구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어졌다.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희망을 찾은 그들이 더 이상 우울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