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읽고

김 정아 2006. 8. 29. 01:17
 

2006년 8월 28일 월요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종류는 여행 산문집과 장편소설이다.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나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 같은 종류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느끼는 살아있는 글들이 짜릿함을 준다.

장편소설류도 읽다 보면 궁금해지는 점이 많고 뒷부분을 혼자 상상해가면 읽는 점이 또 다른 느낌을 주는데 이제 ‘태백산맥’ 이나 ‘아리랑’처럼 10권이 넘어 가는 책은 부담이 되어서 못 읽겠다.


그리고 싫어하는 종류는 수필이나 단편 소설이다.

수필은 자기 현학적인 면이 강하고 말장난도 아니면서 너무 피상적인 이야기들이 공허하게 들리고 다 읽고 나도 뭐가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단편소설은 읽을 만하면 결론도 없이 끝나 버리고,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우울하고 음침하고 부정적인 성격이어서 아주 싫다.


지난 주 성당에서 책 두 권을 빌려 왔다.

그 중 한권은 김현숙의 ‘당신의 아픔까지도 사랑합니다.’라는 책인데 남편이 훑어보더니 “책 내용이 암환자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당신 요즘 기쁘고 즐거운 책을 봐도 기분이 우울한데 저런 책은 안 읽는 게   좋겠다”라고 한다.

나 또한 굳이 내 기분을 더 우울함에 빠트리고 싶지 않아 반납하기로 했다.


또 한권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라는 책이었는데 읽으려고 자세히 보니 단편소설집이다.

잘못 빌려왔네 하며 덮으려다 무슨 내용인가 살펴나 보자하고 읽는데 일단 話者들이 생각 외로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9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이다.


달려라, 아비.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소녀, 그 소녀가 태어나기 전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떠나 오랜 세월이 흘러 편지 봉투에 담겨 돌아온다.

남편이 떠나고 혼자 운전기사를 하며 척박한 삶을 살아오던 엄마에게 미국에 있는 남편의 또 다른 자식이 보낸 편지 속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 기다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알려준다는 편지를 받았다.

소녀의 상상 속에 아버지는 주황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 평생을 달리고 있었다. 소녀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후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더 이상 눈이 부시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씌워 주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 편의점이라는 한 공간에 대해 어떻게 이런 다양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

집 앞에 있는 세 편의점에 다니면서 익명성을 요구하는 이 큰 도시에서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나 알려고 하면 그 불편함을 못 견뎌 그 편의점을 다시 가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편의점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내가 사가는 담배이며, 라면이고, 휴지며, 면도날 따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곧,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물건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도시의 삭막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 외에도 ‘스카이 콩콩’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영원한 화자,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종이 물고기’ ‘노크하지 않는 집’등의 話者들은 질곡된 삶을 살지 않는 그런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작가는 1980년생이다.

아직도 20대인 젊은 여성의 글 속에 다양한 표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내 놓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