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2년만에 가 본 고등학교

김 정아 2006. 7. 27. 04:24
 

2006년 7월 17일 월요일

토요일에 정읍에 다시 왔다.

일주일 만에 보는 친정 엄마는 그 사이 둔한 내 눈에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부모에게 자식의 건강보다 더 중한 일은 없을 것이다.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누구보다 초조하고 두려울 것이다.

검사 결과는 내일 나온다는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두려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당사자인 동생이 겪는 고통이야 두 말할 필요도 물론 없을 것이다.

친정 엄마께 마음의 안정을 주고 싶어 제헌절 연휴를 이용해 친정에 온 것이다.


어디를 갈 만한 정신적 여유도 없고, 전국적인 장마로 갈 수도 없어 집안에만 있다가 오늘은 작은 아이 시력을 체크하고 여분의 안경을 다시 하려고 안경원에 갔었다.

다행히 시력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엄마가 너무 답답해 하셔서 우리 세자매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지나다니는 길에 세 딸이 다녔던 고등학교라 유심히 보았는데 주위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 학교 들어가는 입구도 찾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빽빽한 건물 때문에 유턴을 해서 간신히 찾았다.

진입로 양쪽이 온통 논밭이었는데 공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건물들이 들어서있었다.


학교에 들어가니 웬일인지 운동장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었다.

흙먼지 펄펄 날리는 운동장에 지겹도록 따가운 햇살아래 운동장 조회도 했었고 ,교련 사열을 받느라 여러 학생들이 쓰러지기도 했던 운동장, 체육대회 때도 온 학생이 의자를 들고 나와 응원을 했던 운동장인데 한쪽 끝에 100m달리기를 위한 시설과 테니스 장이 있었다.


운동장이 있던 곳엔 아주 훌륭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곳곳에 나무와 의자와 아기자기한 꽃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여고생들에게 그야말로 마음의 양식을 키우고 정서적 안정을 키울 수 있는 풍요롭고 예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어 감탄을 내 질렀다.

전국의 어느 학교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고, 감히 학교 운동장이라 할 수 없는 황홀한 모습이었다.

지금 그 환경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은 참 복 받은 학생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답고 훌륭한 풍경에도 내 마음은 예전의 발자취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뒤편으로는 급식실도 있고 왼쪽 운동장 쪽으로는 근사한 정보관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체육관 건물이 새로 자리 잡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2년, 세월의 빠름을 온 몸으로 느꼈다.

앞으로 이만큼의 세월이 더 흐르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맘 속으로, 눈 속으로 기억하고 싶어 아주 한참 동안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며 새기고 새겼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내 생활을 하다 보면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다시 이 학교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