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필드데이에 도우미로 나서다.

김 정아 2003. 9. 20. 01:11

5월 16일 목요일

오늘은 아이들 학교의 Field day다

도우미를 모집한다기에 별 다른 생각도 안 해보고
참가하겠다고 싸인을 해서 보냈다.

어제 아이들이 가져온 Field day 안내장의 A4용지 가득 써있는 영어를 사전 찾아 해석도 해 보기 전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영어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도우미냐 ?

나 아니어도 helper 할 사람 많은데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그래도 무슨 일이든 부딪치며, 무슨 일이든 경험하며 이곳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물러 설 수가
없었다.

사전 찾아 대충 문장의 뜻을 알고 나니 더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 체력검사처럼 아이들 줄 세우고 경기 방식을 설명해야 하는가?

내가 무슨 재주로 그 일을 감당하나?

나 때문에 학교 행사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나?

그러나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나! 이래 봐도 한국에서 14년이나 교직에 있어 본 사람이야.

말이 안 통하면 그 까짓 것 눈치로 못하냐?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면 얼마나 다르랴!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15분전에 학교에 오라는 안내장을 읽고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아이들과 학교에 도착했다.

나연이 담임선생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운동장 카운터에 갔다

나연이반의 여러 번 얼굴을 익힌 친절한 엄마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알고 보니 그 엄마는 나연이 반의 Room mother였다.

체육 선생님께 영어가 잘 안 된다고 했더니 Room mother가 자기랑 같이 하자고 한다.

자기는 9시에 교회에 가봐야 되니까 같이 진행하다가 나머지는 날더러 끝까지 봐 달라고 한다.

이름이 뭐였더라 ? 아 베로니카

베로니카와 안 되는 영어로 꽤 오랜 동안 대화를 했다.

베로니카는 완전한 문장으로, 나는 몇 개의 단어로.

다음주 splash day에 오냐고 물었더니 온다고 한다.

나도 그 날도 helper라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집합하고 체육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기구로 이동한다.

약 20종류의 놀이 또는 운동 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경기를 한다.

고리던지기, 공 던지기, 원반던지기, 자루 뒤집어쓰고 달리기, 긴 리본 가지고 달리기 ,미니 축구 골대에 공 넣기, 허들 넘기, 훌라후프 돌리며 걷기 , 줄넘기하면서 뛰기 등등.

기록을 적어주어야 되는지 알고 긴장했는데 그냥 즐기는 것이다.

상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등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있고 신나게 놀면 되는 것이다.

Pre-K반과 킨더가텐반 그리고 1학년 아이들, 그 많은 아이들이 나와서 줄 서고 또 노는데 어쩜 그렇게 조용한지.

한국에서 그 많은 아이들을 풀어놓았으면 정말 난장판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베로니카 옆에서 눈치껏 따라하니 그냥 그냥 할 만했다.

잘 하면 환호성을 질러주고 못하면 등 한번 쓰다듬어주고.

베로니카가 떠난 다음에도 많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도와주고..

미국의 선생님들 너무 편하다.

아이들만 인솔해서 운동장에 데려다주고 의자에 앉아서 모두들 쉬고 잡담하고 있다.

체육선생님 한 분이 주축이 되고 나머지는 helper로 온 사람들이 모두 알아서 해준다.

뒷정리와, 하다 못해 아이스크림 나누어주는 것까지 모두 helper들의 몫이다.

나연이는 다른데 가지도 않고 내 옆에서 공 집어주고 논다.

나의 helper노릇을 했다.



★Room mother: 한국의 반 대표엄마 같은 것이다.
한국은 선생님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만 여기는 아이들의 도우미 같은 것이다.
학교에 자주 와서 아이들 책도 읽어주고 소풍 따라가서 도와주고 .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자기 엄마처럼 껴안고 반가워한다.
이 Room mother도 아이들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아이들 이름 외우는 것은 기본이다.

★Pre-K반: 한국의 6세 반 이하의 어린이들.
보통 초등학교에 다 있지만 의무교육이 아니다.
교육비를 내야한다

★ 킨더가텐반: 한국의 7세 반. 초등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 단계의 학년이다. 의무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