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일요일
이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방이 네 개나 되고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이라 넓고 복도가 있어 마치 호텔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집이긴 하나 37년이나
된 아파트인지라 바퀴벌레가 많이 나오는 게 흠이다.
바퀴벌레 하면 할 말이 무지하게 많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 나와
불을 켜 보면 무지하게 많은 바퀴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데 기가 질려 버린다.
두꺼운 종이를 찾아 아침부터 살생을 하게
된다.
그러다 그것도 매일 하는 것에 지쳐 이제는 손바닥으로 탁탁 친다.
이제 그것도 지쳐 바퀴벌레를 봐도 있나보다
하고 그냥 지나친다.
어느 날 아침 빈 플라스틱 반찬 통에 운이 없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빠져서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잡으려다 이 바퀴가 얼마나 견디나 볼까 하고 호기심에 그대로 놓아두었는데 만 이틀이 지나도 지친 기색 없이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내가 두 손을 들고 결국 그 바퀴를 하수구에 흘려 보냈다.
공룡과 같은 시기에 지구상에 나타나 지금껏 잘 살고
있으니 그 끈질긴 생명력에 찬사를 보낼만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된 바퀴들이 있으니 우리 가족이 부르는 호칭으로는 일명
'매미'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매미 만한 바퀴들이 나타나면 아직도 모두 소리를 지르기 일쑤다.
남편이 출장간 어느 날
희미한 새벽녘 눈을 뜨니 정면 벽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게 언뜻 보아도
거대한 바퀴다.
벽에 붙은 '매미'를 의자
위에 올라가 신문뭉치로 때렸으나 빗맞아 카펫위로 떨어졌다.
몇 번을 때리고 때려도 푹신한 카펫이라 얼른 죽지도 않고 혼자 얼마나
무서워하며 그 바퀴를 잡았던가.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운동하고 들어와서 마당에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오는데 뭔가 '씽'하고 날아
들어와 세탁기 옆에 떨어진다.
자세히 보다 또 기절할 뻔했다.
바퀴벌레가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잊었다.
한국의 바퀴벌레들이 그리울 지경이다.
어떤 사람은 자다가
이마가 간지러워 손을 뻗었다가 매미 만한 커다란 바퀴가 손안에 잡혀 있어 질겁을
했다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벽에 붙은 바퀴를 잡으려다가
얼굴에 떨어져 기절 할 뻔했다는 사람 ,
사람마다 바퀴에 관한 사연들은 모두 있는 모양이다.
옆집에 노르웨이 사람이 사는데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가 미국생활이 재미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남편 왈 바퀴벌레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고
한다.
덩치 큰 남편조차 바퀴벌레 때문에 힘들다고 했으니 우리야 더 하지 .
바퀴벌레들이 없는데서 살고 싶었고
아파트보다 정원 딸린 하우스에서 강아지 한 마리 기르고 살고 싶어 알아보았는데 아무래도 주거비로 너무 많이 지출하게 것 같아 이사는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이곳은 집을 보러 갈 때 집 주인에게 예약을 해야하고 예약이 된 다음에는 거의 많은 집 주인들이 그 시간에
외출을 해준다.
집 보러 온 사람들이 자세히 구석구석 보고 갈 수 있게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집은 잔잔한
음악까지 틀어주고 불을 다
켜주고 외출하기도 한다.
진짜 미국사람 집은 아기자기 하다.
인테리어 잘 된 카페나
식당에 온 기분이 들 정도다.
집 꾸미는데 온갖 정성을 다 들인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다.
구석구석 화분에, 향초에
,갖은 장식품에 오랜 시간을 거쳐 이루어진 아기자기함이 돋보인다.
절대 돈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끊임없는 정성과 오랜 손때가
묻어 이루어져 감히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주인 없는 집이긴 하지만 미국사람들이 어떤 모습으
로 살고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은 하루였다.
'지극히 미국적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외국어를 배울 필요 없는 미국 중학생 (0) | 2003.10.29 |
---|---|
로미오와 줄리엣도 만나고, 백작,공작부인도 만나고 (0) | 2003.10.14 |
필드데이에 도우미로 나서다. (0) | 2003.09.20 |
아이들의 뮤지컬 공연 (0) | 2003.09.20 |
주차문제로 곤란을 겪다. (0) | 2003.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