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오늘부터 나도 학생

김 정아 2003. 9. 8. 11:02

8월 27일 수요일

두 달 넘게 쉰 성인 영어 반이 개학을 해 오늘부터 나도 학생이 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라 강의실이 꽉 메워졌다.

베네주엘라, 스웨덴, 멕시코, 엘살바도로, 이집트, 이란, 스페인, 필리핀, 콰테말라, 콜럼비아, 아르헨티나, 콜럼비아, 니카라구아, 페루, 중국, 베트남, 일본 등 무려 20개국의 12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

중남미는 모두 스페인어를 쓴다.

그야말로 다국적 민족이 영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모였는데 내가 영어를 조금만 잘 한다면 이 사람들한테 각 민족의 문화, 생활상등 배울게 참 많을텐데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미국에서 일년만 살면 영어는 그냥 되는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하긴 나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도 많더라.

과테말라 아줌마는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해서 여기 온지 한 두 달 밖에 안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자그마치 21년을 살았단 소리를 듣고 기절 할 뻔했다.

스페인어를 제 2공용어처럼 사용해 배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더라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석이가 긴 방학동안 한국말만 하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 영어를 잘 못 알아듣겠고, 과학시간에도 하나도 못 들었다고 하더니 나도 똑 같았다.

평소에도 영어를 못 했는데 두 달을 쉬고 가니 도대체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입에서 나와 주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완타니, 구미코 ,헝, 실비아하고도 가벼운 포옹만 했을 뿐 그들이 묻는 말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기껏해야 여름 잘 보냈느냐? 휴가 어디로 다녀왔느냐? 아이들 섬머 스쿨은 어땠느냐? 였는데 우물쭈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끝나는 시간에 선생님은 특별히 예뻐한 선정에게 뭔가를 물었는데 선정이 대답을 성의 없이 하는 것 같더니 그냥 나간다.

선생님은 나에게도 여름 잘 보냈느냐고 물으며 가볍게 안아주는데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이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이 너 좋아했는데 왜 말도 안 하고 그냥 나왔어?" 했더니

"언니,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나오는 거야. 나 오늘 선생님 말 거의 못 알아들었어"한다.

우리 중 가장 영어를 잘 하는 선정이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들었다니 좀 위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확 짜증이 솟았다.

첫날이라 생각 보다 일찍 끝나 우리 집에 모여 월남 쌈으로 점심을 먹으며 각자 당황했던 영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