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 수요일
두 달 넘게 쉰 성인 영어 반이 개학을 해 오늘부터 나도 학생이
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라 강의실이 꽉 메워졌다.
베네주엘라, 스웨덴, 멕시코, 엘살바도로, 이집트, 이란,
스페인, 필리핀, 콰테말라, 콜럼비아, 아르헨티나, 콜럼비아, 니카라구아, 페루, 중국, 베트남, 일본 등 무려 20개국의 12가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
중남미는 모두 스페인어를 쓴다.
그야말로 다국적 민족이 영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모였는데 내가
영어를 조금만 잘 한다면 이 사람들한테 각 민족의 문화, 생활상등 배울게 참 많을텐데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미국에서 일년만
살면 영어는 그냥 되는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자기가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하긴 나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도 많더라.
과테말라 아줌마는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해서 여기 온지 한 두 달 밖에
안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자그마치 21년을 살았단 소리를 듣고 기절 할 뻔했다.
스페인어를 제 2공용어처럼 사용해 배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더라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석이가 긴 방학동안 한국말만 하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 영어를 잘 못
알아듣겠고, 과학시간에도 하나도 못 들었다고 하더니 나도 똑 같았다.
평소에도 영어를 못 했는데 두 달을 쉬고 가니 도대체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입에서 나와 주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완타니, 구미코 ,헝, 실비아하고도 가벼운 포옹만 했을
뿐 그들이 묻는 말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기껏해야 여름 잘 보냈느냐? 휴가 어디로 다녀왔느냐? 아이들 섬머 스쿨은 어땠느냐?
였는데 우물쭈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끝나는 시간에 선생님은 특별히 예뻐한 선정에게
뭔가를 물었는데 선정이 대답을 성의 없이 하는 것 같더니 그냥 나간다.
선생님은 나에게도 여름 잘 보냈느냐고 물으며 가볍게
안아주는데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이다 바로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이 너 좋아했는데 왜 말도 안 하고 그냥 나왔어?"
했더니
"언니,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나오는 거야. 나 오늘 선생님 말 거의 못 알아들었어"한다.
우리 중 가장 영어를
잘 하는 선정이 선생님 말을 못 알아들었다니 좀 위안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확 짜증이 솟았다.
첫날이라 생각 보다 일찍 끝나 우리
집에 모여 월남 쌈으로 점심을 먹으며 각자 당황했던 영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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