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11일 일요일
성당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 없는 목소리로 " 혹시 ○○여고 안 나오셨나요?" 하고 묻는 아줌마가 있었다.
깜짝 놀라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를 한다.
"어머, 너 화영이라고? 정화영 맞아?"
"그래 나 화영이야!"
" 나 정아야, 김정아.
그러니까 너 정우초등, 왕신여중 나온 것 맞지?"
"그래, 맞아. 어떻게 이렇게 넓은 미국에서 12년 동창을 만나니?"
그 기적 같은
인연과 만남에 우리는 너무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기억의 저편, 적어도 20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는 아이가 된 듯한 기쁨으로 추억에 빠져들었다.
12년을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사실 난 화영이와 별로 친하지 않았었고, 우리 사이엔 추억할 게 없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 초반의 그
시절, 그 시골에서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을 때 화영이네는 다방과 약방을 같이 했었다.
그래서 내 기억으로 화영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유복한 생활을 했었고, 그저 평범하게 농사를 짓던 부모를 가진 나와는 좀 차이가 났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었고, 서로의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그저 바람결에 유치원 원장을 하고 있다는 소식 하나 들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넓디넓은 공간의 작은 지점에서 이렇게 마주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그 중에서도 텍사스에 오지 않았다면, 휴스턴에 오지 않았다면, 성당을 다니지 않았다면, 먼저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면 서로 마주보고 식사를 했더라도 성당의 한 교우라는 이름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을 때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인연은 또 무엇일까?
화영이가 영어 공부하러 다니는
학교에 내가 컴퓨터를 배우러 가게 된 인연은 또 무엇인가?
내가 자주 가는 한국 마켓 내에서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인연은 또
무엇인가?
몇 겹의 인연을 거쳐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을까?
우리가 異性간 이었다면 천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나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난
이 기막힌 인연이 신기하기만 하다.
"세상 참 좁아. 오늘 한국 마켓에서 학교 선배를 우연히 만났어!"라든지
" 아이 데리러 갔다가 학교에서
대학 친구 만났어!" 또는
"초임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어" 라고 말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때 난 " 참 인연이 깊나보다. 서로 어떻게 알아봤어? 어떻게 이 넓은 땅에서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니?"라고 말하며 부러웠다.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너무나 기쁘고 나를 먼저 알아 봐준 친구가 있어 오늘 난 너무너무 행복하다.
2005년 9월 13일 화요일
컴퓨터 수업이 먼저 끝나 한 시간쯤 기다려 화영이랑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일 하는 곳에는 30분쯤 늦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 우리는 한 시간 30분쯤 함께 할 수 있었다.
남편은 한국에 있고
아이들만 데리고 온, 기러기 아빠를 둔 가족이었다.
오손도순 부부간의 정도 많고 사랑도 많은 사이였다는데, 그런 두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 낯선 땅에서 그래도 가족의 힘이 있어 버틸 수 있는 우리인데 그 한쪽이 곁에 없는 생활은 말로 안
해도 그 어려움과 외로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참 용하다.
남편도 없고 영어도 맘대로 되지 않는 외국 땅에서 아이들 둘
챙겨가며, 일해가며, 공부해가며 사는 치열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친구야! 힘내라! 언젠가는 가족 모두 모여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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