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큰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김 정아 2003. 5. 23. 00:10


5월 21일 수요일
오늘은 원석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학교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은 이미 빈틈이 없어 여러 번 돌다가 간신히 차를 세우고 강당에 들어섰다.

많은 학부모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여기 와서 느낀 건 어떤 행사든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발표회라도 아빠들이 같이 동참한다.

오늘도 보니 많은 아빠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성인다.

우리 아이들은 아쉽게도 항상 아빠 없는 행사를 가져왔다.

남편은 역시나 이번에도 출장이다. 알라바마와 아틀란타로.

참석하지 못하는 본인도 마음이 아프겠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반쪽뿐인 부모로 가슴 한쪽이 허전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은 아빠 없는 걸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잠시 후에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들의 인도 아래 강당으로 들어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교장선생님의 축사를 들으며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글썽거려졌다.

지난 1년 3개월이란 시간 동안 아이에게 너무나 힘든 일들이 일어났다.

갑자기 달라진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는 한국에 가고 싶어 울었고, 안 되는 영어 때문에 학교에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친구가 없어 혼자 한국 책만 읽다가 돌아온 날들도 허다했다.

점심시간에도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에 그것도 혼자서 먹으려니 지옥이라고 했다.

워낙 소심한 성격으로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돌아왔다.

그러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도 생기고 학교 가는 것도 즐거워하게 되었는데 오늘 드디어 졸업식을 맞은 것이다.

지난 1년이란 시간을 생각하며 이 자리에 선 아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온다.

그리고 이어 과목별 우수자와 학급별 2위까지 상장을 수여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과목별 17명 정도의 학생들이 상을 받았는데 그들의 부모들도 너무나 신나 카메라를 눌러 대었다.

그 많은 수의 아이들 속에 당연히 우리 아이 이름은 없었지만 내심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니 나도 참 나쁜 엄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적응하려 많이 노력한 아이.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과분한 상이건만 더 많은 걸 바라다니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다.

우리 나라의 졸업식장에서 상을 주는 건 모두 외부 인사다.

교육장, 육성회장, 시장, 시의원, 국회의원들이 삐죽 얼굴을 내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선심 쓰듯 상을 주지만 여기는 외부인사가 아무도 없다.

1년 동안 열심히 호흡을 맞추고, 아이들을 옆에서 가장 많이 지켜 본 과목 선생님들이 상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이후에 졸업생 전체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각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주며 껴안아 주고, 교감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이 악수를 하는 걸로 공식행사는 끝났다.

그리고 이어 교실에서 케잌과 음료수 과자로 간단한 연회를 했다.

아이는 교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원석이가 많이 영어가 늘었다며 칭찬을 한다.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머나 먼 이국 땅에서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이제 어린이의 티를 벗고 중학생이 되는 아이가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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