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 다른 나라 구경하기

한 겨울에 야외 온천장에서.

김 정아 2003. 2. 4. 03:55

♥빠빠자따 : 고산 지대에 위치한 야외 온천장이었는데 안개가 산 주위를 둘러싸고 온천물에서 나오는 김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 나라는 온천과 목욕탕이 같은 개념이었던가?

게르마늄이니 황토온천이니 해서 남녀 따로 들어가는데 여기는 수영복을 입고 남녀 같이 들어간다.

고산지대라 추워서 물 밖으로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에 남편과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가고 싶었으나 가 본 곳을 다시 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국은 지금 영하 20도를 오르내릴텐데 이게 웬 일인가 싶다.



♥양어장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는 마지막 주에 3일간의 휴가를 내어 콜롬비아 국경 뚤칸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으나 오랜 여행에 지쳐 우리가 임시 방편으로 내세운 곳이다

산아래 송어를 키워 양식장에 내보내면 관광객이 거기서 잡아 킬로그램으로 돈을 내는 것이다.

낚시 대를 집어넣기만 하면 고기가 따라 올라왔다.

잡은 고기를 그 자리에서 튀겨서 먹었으나 이반만 맛있게 먹었지 우리는 거의 남겼다.



♥역피라미드 공원 : 라마가 유유히 풀을 뜯는 역 피라미드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돈을 흥정해 기분이 나빴으나 옛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가이드는 성의껏 설명을 해주었다.



♥국립박물관 : 여러 번 가기를 시도했으나 이반과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수요일 오후에 동생과 같이 갔다.

외국인이라고 입장료를 엄청나게 받았다.

수 백년 전의 미이라가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 되어있었고 민속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 궁 : 우리 나라 청와대는 경비가 삼엄한데 그 곳은 대통령 알기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보이는 곳에 경비가 한 명이 있었고 바로 앞에는 공원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여유를 즐긴다.

아기를 업은 원주민과 사진 찍기를 원하니 1달러를 달라고 해 주고 한 장을 간신히 찍었다.



♥근교의 거리 : 특별히 다닐만한 곳을 다 다녀 곰빠야 근처의 거리를 구경했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도시가 사람 사는 모습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차에 올랐는데 저 만큼 뒤에서 어떤 남자가 물건을 들고 뛰어왔다.

이반이 문을 잠그고 유리문을 내렸다.

뭔가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더니 남자의 인상이 너무나 험악하게 변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반이 1불을 주었는데 받지 않고 또다시 실랑이가 오가더니 5불을 주자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돈을 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다 죽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반이 엄청나게 놀랐는지 식은땀이 나며 운전을 하지 못했고 엄마도 그 강도 얼굴이 너무나 무서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마터면 머나 먼 타국 땅에서 큰 일을 당 할 뻔했다.

에콰도로 관광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에콰도로 사람들은 경제 수준은 낮아도 (그 때 은행원과 교사의 한달 월급이 100불이었다.)얼굴 표정이 항상 여유가 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엘리베이터건 길거리에서건 눈을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 온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남미에 가면서 가장 설레였던 것이 풍부한 과일을 실컷 맛보는 것이었는데 우리 입맛에 맞는 과일 찾기가 어려웠다.

효원씨가 망고니 빠빠야니 선인장 열매 같은 낯 선 과일을 사 가지고 왔다.

한국에 가면 먹기 힘드니 먹어보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입맛에 안 맞았다.

그리고 맛있는 오렌지를 먹어 보고 싶었는데 좋은 과일은 수출한다고 해 한국에서 먹는 오렌지 보다 맛이 덜 했다.

우리 보다 못 사는 사람들의 나라이어서 인지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주눅 들지 않았다.

장기간 그 곳에 있으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남편과 큰 아이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 인생에 다시없는 귀한 시간이며 소중한 여행이었다.

홍기 방에서 보이는 고등학교전경과 꽃집 빵집 빠네시조 언덕 등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내 삶에 잊혀지지 않는 ,다시 가 볼 수도 없는 귀한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동안이나 내게 이런 여행을 허락하며 물심양면으로 뒷받침을 해준 사랑하는 내 남편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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