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새 학년이 되는 개학을 맞아

김 정아 2003. 1. 4. 00:58

8월 14일 수요일

3개월 가까이의 방학 생활을 끝내고 아이들 개학이 었다.

원석이는 최고 학년인 5학년에, 나연이는 1학년에 들어갔다.

이사를 와서 새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원석이는
벌써 며칠 전부터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일에도 화를 내며 짜증을 부리고 학교 가기 무섭다며 정서 불안 증세까지 보였다

새 학년이라 전학 가고 전학 오는 아이들이
많아서 모두 새로 시작하는 상황이라 너무 걱정 할 것 없다 하니 조금 안정이 되긴 했다.

첫날이라 내가 데려다 주려 했는데 집 앞에 스쿨버스 타려고기다리는 많은 아이들을 보고 나연이는 자기는 스쿨버스 타고 가겠다며 내 손을 놓고 뛰어 가버리고 원석이는 엄마가 데려다 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동생보다 못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쩔 수 없이 버스에 올랐다.

학교가 보기엔 작아 보여도 실내가 어찌나 넓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지 어제 학교 갔다가 길눈 밝은 남편조차 교실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매었다.

원석이 교실은 본관 건물 밖에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는데 나연이가 교실을 못 찾을까 걱정이 되어 따라가 보았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아이들을 기다렸는데 버스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보였고 나연이는 어느 새 친구가 생겼는지 이야기하며 웃으면서 내렸고 원석이 얼굴은 여전히 어둡다.

나연이 교실을 찾아 주고 오는데 소심한 아들이 마음에 많이 걸렸으나 교실을 찾아 들어간 것 같아 그냥 집에 돌아왔다.

방학 때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보기 힘들었으나 개학하는 날이라 저마다 스쿨버스를 태우느라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 손잡고 나오는 덕에 이웃들 얼굴을 처음으로 봤다.

바로 옆집엔 나연이랑 같은 학년인 남자아이가 살고
앞집의 옆집엔 일본사람들이 살고 길 건너에는 싱가폴 사람이 살고.

싱가폴 사람은 자기 남편이 엑손에 근무하다 고향으로 돌아갔다며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친근감을 나타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오며가며 보아온 옆집의 옆집 아저씨 .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24개월 된 딸아이 데리고 집에 있기에 노는 사람인가 했는데 오늘 알고 보니 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이라고 했다.

패리슨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학교인데 이름은 잊어 버렸다.

우리 아이도 5학년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했다.

아이들 개학 덕에 이웃들하고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오후에 아이들 데리러 갔다가 또 황당해졌다.
좀 일찍 도착했는데 차들이 한 줄로 죽 늘어 서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서있었는데 아이들 끝날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차에서 내릴 생각들을 안 했다.

나는 내려서 아이들을 찾아서 차에 태우기로 했다.
많은 아이들이 식당에서 교사들의 지시를 받으며 버스 번호별로 줄을 서고 있었다.

나연이와 원석이가 금방 눈에 띄어서 데려가겠다고 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한다.

여기 있는 줄은 스쿨버스를 타는 줄이라고 한다.
아니, 내 자식을 내가 데려 가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나연이 담임선생님이 보이기에 오늘은 내가 데려가고 내일부터는 버스를 태우겠다고 했더니 뭐라고 길게 설명을 해주더니 사무실 가서 싸인을 하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데리고 사무실에 갔더니 거기서 또 뭐라고 하면서 안 된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이 허락했다고 했더니 장황하게 뭔가를 말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이유를 쓰라고 한다.

이유는 무슨 이유가 있어. 끝났으니 데려가는 거지.

학교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아이들 찾아서 차로 돌아가는데 차에서 학부형들이 안 내리는 이유를 알았다.

부모가 데려가는 아이들은 모이는 장소가 또 틀렸다.
정해진 장소에 모여있으면 차가 한 대씩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태워서 다시 빠져 나오는 것이다.

내 차가 주차해 있으니 뒤차들이 좀 힘들게 빠져나가는 것 같아 미안했다.

남들이 '저 동양 엄마 왜 저래?'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창피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아이들 데리러 가는 건 포기해야겠다
아이들 인수 인계하는 것은 정말 확실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물 샐 틈조차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버스 타는 아이들 명단 확인해서 각 버스까지
데려다주고 승용차를 타는 아이들은 또 거기까지
정확하게 인계해준다.

집에 데려온 아이들에게 오늘 학교 생활이 어땠었냐고 물었더니 원석이는 친구들이 서로 간에 아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자기만 쳐다본 아이들도 없어서 편하고 좋았다고 말한다.

나연이야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아이라 물어보기도 전에 "엄마, 학교 좋아"라고 한다.

하긴 이 학교가 케이리 중에서도 가장 좋은 학교중의 하나라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패리슨에 다니게 되었다고 말하면 열이면 열 모든 사람이 좋은 학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전학을 온다고 했다.
5학년 교실은 본관 건물 밖에 따로 가건물로 지어 져 있었다.

어제 가건물 교실을 보더니 원석이가 실망 실망하며 더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늘어나는 아이들의 수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학교에 가건물 교실이라니 !

가건물도 더 늘릴 수가 없었던지 원석이 반은 학생 수 20명에 정식 담임교사가 두 분이다.

그 두 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한 반을 이끌어 갈지 걱정도 되었다.

한국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두 아이 반 모두 동양 아이는 없는 것 같다.

여기는 입학식이라는 게 없다.
개학 하루 전 모든 학생과 학부형들이 학교에 와서
교실 확인하고 담임선생님을 만나 버스를 탈것인가
부모가 데려다 줄 것인가를 결정하고 학교 티셔츠 하나씩 사서 돌아오는 오리엔테이션을 갖는다.

난 그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걸 우습게 알아 혼자 아이들 데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입구에서부터 당황했다.

교실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난감해 하고 있는데 다행히 남편이 학교에 들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같이 헤맸다.

체육관에 뭔가를 팔고 있었는데 저게 도대체 뭐에 쓰는 건가?
저걸 꼭 사야 하는가? 요리 책은 사서 뭘 하라는 건가? 메모지는 뭐 하라는 건가?

팔 다리가 있어도 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참 괴롭다.
하여튼 살 것을 사고 돌아왔는데 오늘부터 나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두 세 장 씩 안내문을 가져오고 나는 사전 찾아 해석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이곳의 초등학교는 1학년 선생님은 계속 1학년만 하고, 2학년은 2학년만 한다.
한 번 맡으면 그 학년만 끝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 학년 선생님이다라고 말한다.
옆집의 옆집 아저씨가 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이라고 말하기에 나는 한국에서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라고 했더니 굉장히 반가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