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얘들아! 집에서는 한국말로 놀아라!

김 정아 2003. 4. 13. 00:17
4월 9일 수요일

"얘들아, 집에서는 한국말로 놀아라!"

요즘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말이고, 이 말을 할 때마다 작년 상황과 비교되며 웃음이 난다.

미국에 온지 이제 1년하고 2개월 째다.

처음 여기 와서 나의 아침저녁 걱정은 오로지 아이들 영어였다.

큰아이는 3학년을 마치고 왔다하나 초등학교의 영어 교육이 내실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부러 영어 학원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상어가 아닌 영어를 스트레스 받아가며 시킬 필요가 없었다.

'가서 배우게 하자' 이것이 우리 부부의 생각이었다.

작은아이는 한글 간신히 읽고 아직 어려운 글자는 못 쓰는 유치원생이었다.

우리 글도 잘 모르는데 당연히 영어는 A도 모르고 왔다.

그러던 아이들이기에 여기 와서 약간의 후회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영어 못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배우게 할 걸 그랬나?'

조바심을 가지며 지켜보는 동안에 참 많이 힘들었다.

작은아이는 아침마다 학교 안 간다고 울고, 4학년이었던 큰아이는 친구들하고 한마디도 못하고 한국 책 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그 것만 읽고 왔다.

오죽하면 그 아이 소원이 "엄마 나도 식당에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밥 먹고 싶어요."였다.

내가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 할 때마다 주위사람 백이면 백 사람 모두 그랬다.

"아이들 영어 금방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때는 그런 위로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니 한달 두달 시간이 가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걸 즐거워하기 시작하면서 영어가 부쩍 늘었다.

특히 작은아이는 워낙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라 오빠보다도 말하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면서 요즘은 집에서도 두 아이가 놀면서 영어를 쓴다.

우리 작은아이, 애국가는 다 잊어버리면서 미국 국가는 잘 부른다.

Playground는 알지만 거기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무엇
인지 모른다.

한국말을 영어 발음처럼 굴린다.

한글은 잘 못쓰면서 영어 작문은 그럴듯하게 한다.

이제는 한국어가 총체적인 난관에 부딫혔다.

1년 사이에 역전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교포들의 자녀가 한국말에 서툰 것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반드시 한국에 돌아간다.

그래서 걱정이다.

설령 여기 산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에 서툴게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반전된 짐 하나가 다시 내 등에 얹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