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거나 슬프거나..

내 친구 K

김 정아 2024. 3. 14. 00:06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나에게 K라는 친구가 있다
딸아이의 주일학교 같은 학년의 학부모로 만났으니 20년이 넘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서로 죽고 못 살아 주말에 서로 집을 오가며 슬립오버를 하기도 하고, 봄 방학 때는 두  아이들 데리고 1박 2일 여행도 다니곤 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이들이 만나는 횟수가 아주 줄고, 대학부터는 두 아이가 만날 일이 전혀 없었다.
 
두 아이의 사이가 소원해지고 그 간에 나도 내 비지니스를 시작하면서 K 와의 사이도 아주 멀어져갔지만, 뜬금없이 몇 년만에 전화를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만큼의  정신적 유대는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근  10년 간에 우리가 얼굴을 맞댄 적은 많아야 한 두 번 정도 성당 미사를 끝내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 1월 쯤 그 친구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같이 밥 한 번 먹을 자리를 가졌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첫 치료는 그의 전남편이 와서 도와주었고, 두 딸들은 타주에 있으니 이렇다하게 친구를 돌 봐 줄 사람이 없어 기꺼이 내가 친구의 주보호자 역할을 자청했고, 친구를 데리고 키모를 받으러 병원에 오가게 되았다.
항암이  끝나고 수술을 하고 이제는 방사선을 해야해서 같이 갔는데 방사선 실에 들어가 15분 정도 되니 다 끝났다고 나왔다.
방사선은 시간이 짧으니 본인이 운전하고 다닐 수 있다고 더이상 나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 달 간의 방사선이 끝나고 또 항암 주사를 맞는데 체력이 다 떨어져 운전하기 힘들다고 해
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반에 집을 출발해 친구 집에 와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친구는 “ 세라피아(제 세례명), 내가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냐?' 한다.
" 은혜는 무슨 은혜? 근데  갚고 싶어?  그럼 건강하게 다시 일어나면 되!"
몸안에 암세포는 다 죽었지만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앞으로 세 번 더 키모를 해야 한다고 하니 그간 친구나 나나 노심초사 했던 마음이 많이 가라 앉았다.
 
그리고 이번 5월에 세번째 대학원 졸업을 한다.
한국에서 명문 여대를 졸업하고 휴스턴에서도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전공이 다른 두개의 석사 학위가 이미 있고 이번엔 다른 전공의 대학원 졸업이다.
친구는 조심스럽게 " 세라피아, 나 소원이 있어" 한다.
" 소원? 나한테 해야 하는 이야기야?" 했더니
"5월초에 내 대학원 졸업식에 좀 와 줄 수 있어? 애들이 내 졸업식에 못 온대" 한다.
"알았어 , 같이 가자. 암투병하면서 마친 석사인데 얼마나 훌륭한 졸업식이냐?"
친구는 " 고마워 그러면 내가 호텔 예약하고 그 도시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쐬고 오자" 하면서 서로 어깨를 토닥이고 키모가 끝나고 친구 집에 데려다 주고 난 가게에 돌아와서 일을 하고 있다.
 
오늘 무지하게 긴 하루지만 친구의 암세포가 사라져 기쁘고, 암투병 중에도 이뤄 낸 대학원 졸업에 나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