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응급실, 그리고 새학년

김 정아 2010. 8. 24. 07:11

2010년 8월 23일 월요일

3개월에 가까운 아이들의 방학이 어제로 끝나고 드디어 오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난 기억에도 없는데 고등학교에 가면 엄마가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기억에 없는 약속을 지키느라 고등학교 졸업하는 4년 내내 나연이 라이드에서 못 벗어나겠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체증이 심하지 않았고 내 일을 보다가 오후에도 데리러 다녀왔다.

다행히 선생님들도 다 좋고 ,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다 같은 고등학교로 가게 되어 아는 친구들이 많아  마음이 편했다니 다행이다.

 팔 아픈 것은 어떠냐고 물으니 타이레놀을 먹었어도 통증은 계속 있었다고 한다.


어제 밤에 나도 아이들 개학에 따라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나연이는 샤워를 한다고 화장실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크게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엄마의 직감으로 뭔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팍 오는 것이다.

부랴부랴 일어나 아이한테 가 보니 아이의 한쪽 팔이 엄지 손가락 길이만큼이나 깊게 파여 갈라져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세라믹으로 만들어져서 비누를 놓은 통이 깨져서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는데 그 비누통 뿐만 아니라 욕조까지 통째로 갈겠다고 맘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샤워를 하면서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그 날카로운 부분에 걸려서 살이 찢긴 것이다.

아이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사무실에 나가 있는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남편과 아이를 태우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아이는 너무 놀라 오히려 아픔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응급실이라고 해도 말이 응급이지 전혀 그 구실을 못하는 응급실임을 4년 전에도 한 번 느꼈기 때문에 병원에 와서도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왠일인지 수속이 빨리 진행 되어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니 혈압을 재고 바로 의사 선생님이 왔다.

마취 의사 따로 정형의사 따로 올 줄 알았는데 그 선생님이 마취주사를 놓고 꿰매는 일까지 했다.

무려 아홉 바늘을 꿰매고 1시간 30분도 안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시간이 밤 1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출장을 자주 다니던 남편이 어제는 집에 있었다는 것이다.

원석이도 없는데 나 혼자 있었더라면 우왕좌왕 정신도 못 차리고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갈 생각이나 했을까 싶다.

물론 이런 사고가 없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 그나마 찢긴 부위가 팔이어서 다행이고, 오랜 시간 지체 안 하고 한 번에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는 이렇게 개학 몇 시간 전에 큰 사고를 당하고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갔는데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으른 부모 때문에 깊은 상처가 났으니 아이에게 참 못할 짓을 했다 .

그런데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좋아지는 일만 남았으니 또 감사한 일이다.



*개학 첫날은 이렇게 꼭 사진을 찍어 남깁니다. 원석이가 없어 이제 나연이만 찍어 주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9학년이요. 오른 팔이 많이 아픕니다.


*테일러 엄마도 선생님인데 오늘은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우리집에 데려다 놓고 갔습니다.

두 아이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