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인요한 교수의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을 읽고.

김 정아 2007. 10. 26. 00:00

2007년 10월 25일 목요일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파란 눈의 아저씨 인요한 교수의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성장 과정을 거치고 대전에서 외국인 중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 의예과를 졸업해 한국과 미국의 의사면허증을 딴 의사 선생님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의 어려웠던 시대에 한국에 선교 사업을 하러 왔던 조상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저자까지 한국 생활을 하게 된다.

순천에서 온갖 개구쟁이 짓을 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한국인보다 우리 민족의 아픔을 더 아파한 그, 시민군과 외신기자의 통역을 하면서 졸지에 불순분자로 찍혀 추방당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태어난 이 나라 땅, 키워 준 이 나라 땅에 남기 위해 시골 순천에서 기관원들에게 감시 당하는 삶을 선택해 살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는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할까, 이곳에 계속 살까 고민하다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한다.

파란 눈의 젊은 학생이 한국말은 유창하게 잘 하지만 한국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어 수업 따라가기가 영 어렵다.

5천 년이나 되는 한국의 역사수업도 힘들고 안간힘을 쓰고 공부하지만 결국은 유급을 당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해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외모는 전형적인 미국인지만 그 속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어 미국인들보다 더 편한 게 한국인이라고도 한다.

대전에서 외국인 학교에 다닐 때 어느 주말 외출을 할 일이 생겼는데 입을 옷이 없었다.

세탁기에 들어간 빨래를 다시 입을 수도 없어서 기숙사에 유일한 한국인 형의 양복을 허락도 없이 꺼내 입고 외출을 한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자기가 너무나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감히 남의 옷을 주인 허락도 없이 입고 나왔나 생각하며 주는 벌은 달게 받으리라 각오하고 형을 찾아 갔는데 이왕 입고 나간 것 잘 놀다 왔니? 하더라는 것이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서술한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근무하며 그는 한국형 엠블런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미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아 엠브런스를 대대적으로 보급하게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앰블런스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생소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로 인해 우리 나라의 의료 서비스가 더 향상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자기 조국 미국보다 더 사랑하는 한국과 완전한 일치점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난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만났을 때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한국을 사랑하더라도 이런 식의 제목은 너무나 기회주의적인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살이 찌푸려 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한국 사랑과 한국인의 의식과 통하는 그의 사상을 읽다 보니 참 자연스러운 제목이구나 싶은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다.

나 또한 내 나라보다 못한 나라에서 4대 째 살고 그 나라에서 태어나 내 나라 말처럼 언어를 구사하고 대학교육을 받았다면 나도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책 본문에 형들이 미국에서 얼마씩 살다 오면 영어가 아주 능숙해져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리고 언젠가 오락프로에 나와서 전라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던 이가 바로 이 저자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의 꾸밈없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