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달라이라마의 '용서'를 읽고

김 정아 2006. 10. 16. 00:44
 

2006년 10월 14일 토요일

달라이라마와 그의 오랜 친구 빅터 챈이 지은 ‘용서’라는 책을 읽었다.

그의 친구가 달라이라마와 접견하면서 느껴온 그의 생각과 사상 등을 적었는데 저자 이름에 달라이라마가 들어가 있는 것은 좀 이상하다.

감동 깊게 읽었던 ‘마시멜로 이야기’의 번역자가 정지영이라는 것을 보고 ‘어, 이 사람이 이렇게 능력이 있어? 바쁜 와중에 책을 다 번역 했네’ 했는데 지금 그 책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이 책도 저자 이름에서 달라이라마는 빼야 할 것 같다.

달라이라마는 이 책의 모태가 되었지만 그가 직접 글을 쓰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반은 그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 종교적 지도자이다.

티베트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핍박과 설움을 당한 나라이다.

1956년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를 침공하고 1959년 티베트의 반란을 계기로 달라이라마를 축출하고 티벳의 중국화를 추진하였으며 1980년대 초에 들어서 중국의 통치가 완화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티벳 지역은 중국군들의 삼엄한 감시 하에 독립 운동이 철저히 차단되고 민족지도자들에 대한 중국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티벳도 마치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억압을 당했던 것처럼 국가적 수난이 계속되고 ,국민들이 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1959년에 인도로 망명을 한 달라이라마는 ‘용서’라는 책에서 강조한다.

‘가장 큰 수행은 용서이며, 용서는 마음을 지극한 평화에 이르게 한다.

용서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에 이르게 되는 길이다.

따라서 나는 중국 정부도 , 중국인들도 용서할 수 있다.’


나에게는 참으로 피상적으로 들리는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용서와 이해와 행복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가 간에 용서가 그리 쉽게 된다면 그것은 한 나라 지도자로서 국가를 포기한다는 말은 아닌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독립을 추구하고 어떤 투쟁을 해서라도 국권을 되찾아야 되는 것은 아닌가?

너무 안이한 방법은 아닌가?

하긴 뭐 인도의 간디 같은 지도자도 있긴 했다.


언젠가 티베트 인들이 유엔 앞에서 단식 투쟁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의 인권 탄압으로 인한 티베트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장관이 되었다고 하니 지금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닮아서 그리 평화스러운 투쟁을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구구절절 옳은 소리지만 용서라는 말을 실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제가 요즘 글을 자주 올려서 이글도 댓글 닫아 둡니다. 댓글 달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머물다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