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아빠와 함께 한 마지막 콘서트

김 정아 2005. 12. 20. 01:31

2005년 12월 16일 금요일

 

원석이와 나연이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배우러 음악학원에 다닌다.
이 음악학원은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각기 전공한 음악학도 부부가 운영하는 종합 음악 학원이라 수강생도 꽤 많은 편이고 대부분의 선생님이 한국인이라 영어 쓸 일이 없어 편하긴 하다.
하지만 워낙 운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40분을 운전해 가야 된다는 사실이 무척 부담스럽다.
그래서 수요일 오전엔 되도록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체력을 소모시키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큰맘을 먹고  아이들을 태우고 학원에 간다.

 

 

오늘은 음악 학원에서 1년 결산을 하는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근처 대학의 콘서트 홀을 빌려 격식도 차리고, 트로피까지 만들고, 신문사의 협찬까지 얻어 하는 첫 콘서트다.
여 선생님들과 여자아이들은 멋진 드레스를 입고, 남자들도 턱시도나 연주복을 입고 멋지게 나타났다.
연습을 위해 5시 30분까지 오라고 해 시간을 맞추어 갔는데 아무도 안 나와 있었다.
시간 약속을 하면 먼저 가서 기다릴 망정 절대 늦지 않고, 사정으로 내가 1~2분 늦는 것 가지고도 상대에게 미안해 혼자 안달을 하는 나이기 때문에 시간 약속하면 항상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오늘도 무려 1시간 40분을 먼저 가서 기다렸다.

 

 

연습을 위해 아이들을 콘서트 홀로 들여보내고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주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저쪽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남편이었다.
뜻하지 않은 남편의 출현에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기로 오늘 내 전화도 못 받아 줄만큼 바빴고 거의 밤샘을 하다시피 해야 할 상황이어서 난 남편이 오리라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콘서트라고 생각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모든 일을 제쳐놓고 왔다고 했다.
아빠의 등장에 아이들도 깜짝 놀라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시간 여유가 조금이라도 된다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가족과 늘 함께 할 사람인데......
남편은 나연이 피아노 연주를 보고 원석이의 클라리넷 연주 한 곡을 남겨 놓고 중간에 돌아갔다.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여하튼 남편의 그 성의가 고마워 감동이 들 지경이었다.
 


음악적 재능과 소양이 전혀 없는 우리 부부를 닮아 나연이는 징글벨 하나를 한 달 이상을 쳤다.
피아노 치는 걸 너무 싫어하고 재능도 없어 진도가 나가지도 않고, 나 또한 열심히 하라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연이는 대학의 콘서트 무대에 서 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 뿐이다.
연주가 끝나고 한 번 밖에 안 틀렸다고 좋아하는 아이는 나연이 뿐일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만족하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두운 길을 운전해 집에 돌아 온 시간은 밤 10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연주 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끝난 후 트로피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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