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야 놀~자

옆집의 노르웨이 아줌마도 이사를 갔다.

김 정아 2003. 1. 11. 01:17
6월 28일 금요일

옆집 노르웨이 아줌마 집이 텅 비었다.

베란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화분 몇 개마저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왜 이렇게 허전하고 허탈한지 모르겠다.

그 아줌마를 처음 만난 게 여기 온지 10일쯤 지났을까?
놀이터에 갔는데 아이들 셋 데리고 나와서 놀고 있었다.
영어가 전혀 안 되어 눈인사만 교환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만나면 "hello" "hi" "good morning"등 간단한 인사만 주고받았다.

그 집 여섯 살 된 남자아이는 나만 보면 뭔가 할 말이 많은지 한참 동안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난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지만.

그리고 간혹 내가 대답을 잘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면 박장대소를 하며 신나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어느 날 집 앞에 이삿짐 트럭이 오고 많은 박스들이 실리곤 했다.

어디 먼 데로 이사가나 보다 했다.

그제 수영장에서 만났는데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네 왔다.

이사 가느냐고 했더니 노르웨이로 간다고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이 곳에 2년 간 살면서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도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하니 아메리카 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었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마음의 교감을 나눈 것도 아니건만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옆에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영어만 조금 되었다면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미국이 고향이 아니라는 동질감 때문에 더 친근감을 느꼈을까?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부러워서 일까?

오늘 떠난다고 했으니 지금쯤 비행기 안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다.

고향에서의 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는데 정말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내 일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이지만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6월 29일 토요일
드디어 이사 짐도 다 나르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느낌이다.

수요일부터 내가 여덟 번을 오가면서 조금씩 짐을 나르고, 날라 온 짐마다 그때그때 정리를 하고 나니 어제 , 오늘은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혼자서 짐 나를 일이 엄두가 안 나더니 막상 일이 닥치니 아줌마 관록이 여기서 나오나 보다 싶게 가뿐하게 일을 했다.

금요일 밤에는 남편과 내가 나머지 박스들을 모두 실어내고 보니 정말 남은 것은 침대 세 개와 식탁과 소파, T, V , 책상 두 개 ,세탁기, 빨래드라이어 ,피아노뿐이었다.

부동산 아저씨의 아들들과 더불어 순식간에 트럭에 싣고 와서 내리고 큰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대충 모양새가 갖추어졌다.

남편의 사무실을 중심으로 전에 살던 아파트는 동쪽으로 15분쯤의 위치에, 이사온 이곳은 서쪽으로 5분쯤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예쁜 집을 가졌는데 마음이 왜 이렇게 불안할까?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그럴까?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디디던 날도 이런 불안감이 있었었던가?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적막감인가?

원인 모를 이 불안감이 빨리 떠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