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야 놀~자

영어야! 내게로 와라!

김 정아 2003. 1. 4. 01:03
7월 22일 월요일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힘으로 아이들을 kids 센터에 맡겼다.

아직 개학은 3주쯤 남았는데 집에 데리고 있느니 영어 한 마디라도 더 듣게 하려고 여기저기 camp를 찾았는데 마땅한 게 없던 차에 집 앞에 큰 kids 센터가 있어서 등록하고 서류 작성하고 돈 내고 혼자서 다 했다.

마켓이나 학원이나 내가 돈을 내는 입장이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고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다.

내가 영어를 못 해도 그 쪽에서 어떻게든 알아들으려고 애쓰고 의사소통이 안 되면 오히려 그쪽에서 미안해한다는 사실을 5개월만에 깨달았다.

1,2불도 아니고 일주일에 260불이 넘어가니 오늘 아침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대충 의사소통해서 아이들 맡겨 놓고 왔다

나연이는 평소 성격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밝은 얼굴로 갔고 원석이는 또 낯선 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이제 우리가 이곳에 온 지 만 5개월이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운전하고 잘도 다니고 적응을 참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적응을 못 할 것도 없다.

가끔 아옹다옹 싸우긴 해도 세상에서 나를 제일로 아는 남편과 아들이 있고 딸이 있어 혼자 하는 생활이 아닌,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데 사막에 살아도 빛은 있을 것이다.

아직도 나는 가끔 학교에 지각해서 당황해하는 꿈을 꾸고 눈을 뜨고는 '아 여기는 미국이지'하며 안도의 숨을 쉰다.

내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고 여기 있는 것이 꿈이 아니길 바랄 때도 있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제 겨우 영어 말문이 트여 가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내가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이다.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가 옆 운전자가 백인일 때, 혹은 흑인일 때 화들짝 놀라곤 한다.

'저 사람들이 왜 여기 있지? 아! 여기는 미국이지 '하고 뒤늦게 깨닫고 내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원석이는 걱정이 태산이다.

"엄마 만 5개월 지났는데도 나 영어 이것 밖에 안 되"하며 걱정이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도 난 원석이랑 같이 가면 안심이 된다.

내가 못 알아듣는 소리도 어떤 때는 나보다 잘 들을 때가 있다.

지난 번 월 Mart에 갔는데 어떤 백인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데 귀에 안 들어와 멍하고 있는데 원석이가
"엄마 나연이 좀 빌려 달라고 하는 것 같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물건을 사려는데 맨 위에 있는 게 손이 안 닿아 나연이를 좀 안아서 물건을 내리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연이는 풀장에서 곧잘 같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몇 마디씩 주고받기도 한다.

아이들 영어 때문에 걱정하면 백이면 백 모두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 걱정하지 말아요. 금방 이예요. 엄마가 문제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깨우쳐요"한다.

이제 정말 내가 문제다. 어디를 가더라도 핸드폰 없이 가면 마음이 불안하다. 그런 날은 운전할 때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아마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이 나를 가만히만 놔두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을 것이지만 1년이 지나도 같은 모습이면 무지하게 욕심이 많은 남편은 또 나를 다그칠 것이다.

'온지가 언젠데 영어가 이것 밖에 안 되?' 하면서.
한국 슈퍼에 가고 한국 미장원에 가고 한국사람만 만나고 살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게 무엇이란 말인가

여하튼 난 영어에 큰 욕심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의 언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단 말이냐.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것 보다 아이들 잘 가르쳐서 도움 받는 게 더 빠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