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경제인

간신히 화해를 하긴 했는데...

김 정아 2023. 11. 17. 01:59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지난 주 목요일에 메니저 티나와 부엌 아줌마 엘리샤가 한 바탕 난리를 쳤다.
난 그날 약속이 있어 가게를 쉬는 날이었다.
그 날 가게는 드라이브 쓰루와 안으로 밀려드는 손님이 많아 정신 없이 주문이 쏟아지는 와중에 단체 주문 큰 것이 하나 들어왔다.
그런 큰 주문은 전날 주문을 하던가 ,아침 일찍이라도 해 주면 준비가 수월한데 한참 바쁜 12시 30분에 주문을 해서 2시 30분에 찾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게 웹사이트 시스템은 단체 주문에 '수락' 버튼만 있고 '거절' 버튼이 없다.
그런 상황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난 당연히 거절 버튼을 눌렀을텐데 그러지 못하니 가게에 가지 못하는 내 속은 타들어갔다.
 
주문이 아주 복잡한 것이어서 또티아 트레이도 있고, 샐러드 트레이도 있고, 샌드위치 트레이도 있으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날 스프링 믹스가 거의 떨어져 사와야 한다고 해서 그 바쁜 시간에 티나가 사러 나갔다 왔다.
 
시간은 흘러가고 손님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니 티나와 엘리샤가 거의 멘붕상태가 와서 둘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그러면서 티나는 3번이나 나한테 전화를 해서 엘리샤가 주문을 안 만든다고 하고, 엘리샤도 3번이나 전화를 해서 티나가 안 도와 준다고 서로 난리를 치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전화가 오고 메세지가 왔는데 난 더이상 응대를 안 했다.
티나가 저녁 시간 직원 하나를 한 시간 일찍 불러 어찌 어찌 다 주문을 만들고 손님이 찾아 갔다.
 
티나는 더 이상 엘리샤와 일을 못하겠으니 우리 가게를 그만 두겠다고 하면서 가게 열쇠와 메니저 카드를 두고 나가버렸다.
내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엘리샤의 행동을 알 것 같다.
엘리샤의 주 업무는 주문을 받은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이고 티나는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일이다.
티나가 메니저이니 바쁜 시간에는 부엌을 돕는 일도 하지만 티나의 주업무가 아닌데 메니저라는 이유로 아마도 티나에게 많은 것을 미루었을 것이다.
손톱만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자기가 힘들면 입이 나와서 불만을 쏟아내면서 그 바쁜 시간에 꼼지락 거렸을 것이다.
 
티나가 메니저카드와 가게 열쇠를 놓고 나갔다는 소리에 다른 직원들이 드디어 엘리샤가 메니저까지 내 쫒는구나, 티나가 정말 안 나오면 나도 가게 그만 두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한국에 갈 날이 가까워 와서 둘이 화해를 시켜야 해 둘다 감정이 가라앉을 만한 일주일이 지난 어제 둘을 불러 대화를 시켰다.
서로 간에 아직도 감정은 남아 있지만 둘 다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화해는 했지만 그 화해가 언제까지 유효할 지는 모르겠다.
내가 한국에서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서로 잘 지내야 할텐데 걱정이다.
내가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수시로 싸우는 애들 중재역할 하는 것도  참 짜증난다.
 
우리 가게는 큰 변화 하나를 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게에서 빵을 굽지만 이제 일괄적으로 본사에서 빵을 만들어 배달을 하는 것으로 오스틴 지역에서 테스트 중이다.
그러면 가게에 제빵사가 없어지고 새로 오픈하는 가게들은 베이커리 구역이 없어 적은 면적으로도 가게를 운영할 수가 있다.
빵의 맛만 유지된다면 어느 가게 주인이든 환영 할 듯 하다.
나도 환영한다.
이전에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지만 엘리샤가 저렇게 기고만장한 데는 우리 가게의 제빵사 Leo가 지 남편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빵을 굽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그러면 레오를 어떤 포지션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을 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니 주문 받는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고, 그러면 부엌으로 돌려야 하나 했는데 영어를 못 읽으니 샌드위치도 못 만든다.
그러면 가게 구석구석 청소하는 일로 돌려야 하나?
일주일 6일을 매일 6시간 반씩 청소할 일이 없는데 어쩌지? 하면서 온갖 머리를 굴러가면서 그래도 청소 포지션으로라도 데리고 있어야지 어째? 했었다.
그런데 그날 엘리샤의 태도를 보고 내 마음이 아주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레오를 집으로 보내는 게 정답이었다.
반쪽을 잃은 엘리샤는 더 이상 무법천지처럼 지가 주인인양 행세 하지 못 할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티나에게는 내가 문자를 보냈다.
I am always your side.
Won is my son
Nayeon is my daughter
Tina is my American niece
 
국적은 달라도 티나는 나의 조카 같은 아이다. 그런 마음도 표현을 해야 할 것 같아 문자를 보냈더니 마음이 풀려 어제 웃는 모습으로 가게에 나타났다.
 
 
 
*몇 달 전에 엘리샤의 횡포에 못 이겨 오스카라는 직원에게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매일 작은 분량으로 만들었는데 11월부터 가게가 한가해져 오스카가 더 이상 빵을 안 만들어도 되어 지금은 부엌 일만 하고 있어요.
이렇게 여러번 만들었더니 엘리샤와 레오가 겁을 좀 먹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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