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고혜정의 '친정 엄마'를 읽고

김 정아 2007. 6. 30. 02:16
 

2007년 6월 29일 금요일

성당의 정규미사를 보기 시작한지 두 달쯤 된 것 같다.

강론이 너무나 길고 지루하긴 하지만 정규미사가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일주일 만에 만난 친구들과 친교관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도서실에 올라가 원하는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점이다.


지난 일요일에 도서실에서 고혜정의 ‘친정엄마’라는 책을 빌려 왔다.

고두심씨 주연으로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고, ‘친정엄마와 2박 3일’이라는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작가의 친정엄마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친정엄마들의 공통점을 지은이가 잘 표현해 낸 것 같다.


전북 정읍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나도 고등학교까지 정읍에서 나왔다. 어쩌면 내 후배는 아닐지?) 서울로 대학을 오고 결혼을 하고서도 저자의 어머니가 딸을 위해 음식을 이고 지고 서울까지 올라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좋아하는 사과와 과일통조림까지 보따리에 싸가지고 오다가 언덕을 올라가는 중에 보따리가 풀려 사과가 언덕 아래로 굴러가는 내용이 나온다.

사과를 이고 온 어머니에게 저자가 짜증을 부린다.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사과를 무겁게 왜 정읍에서부터 사가지고 오냐고요”

“ 슈퍼 갈 것 없이 우리 새끼 좋아하는 것 빨리 멕일라고 그랬지야”


어느 방송의 일요일 프로에 ‘금촌 댁네 사람들’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아주 인기 있던 프로였다.

나도 배꼽을 잡으며 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코너를 이 저자가 썼다고 한다.

정읍에서 이웃 집 사람들이 다 몰려들어 같이 보는데 저자의 어머니는 그 시간에 부엌에서 다른 일을 하며 한 번도 그 프로를 보지 않는다고 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 엄마는 왜 내가 쓴 것 안 봐?”

“ 다른 사람들은 다 재미있다고 봐도 난 안 봐. 그렇게 재미있게 쓰려면 우리 새끼 날 밤을 새가며 얼마나 고통스럽겄냐. 난 니 고통이 느껴지는데 남들처럼 어떻게 웃어가며 보겄냐. 그래서 난 안 본다.”

정말 이런 마음이 친정 엄마 마음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난 내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는 아니다.

우리 딸은 커서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 지 궁금하다.

절대로 ‘헌신’이나 ‘희생’이라는 말로 날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서보다 본인의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엄마라면 맞을 것 같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뉴스 인터뷰를 보았다.

지방에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살다가 그 집을 팔고 빚을 내어 강남으로 전세 온 주부였다.

왜 빚까지 져 가면서 이사를 왔냐고 하자 그 주부가 말하기를 “ 어차피 아이들 위해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고 했다.

그러면 40도 안되었던 그 주부에게 본인의 인생은 없단 말인가?

앞으로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주부가 어차피 자식 위해 사는 인생이라니!

자식 인생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빚까지 내가면서 자식을 위해 살 수 없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 된 것인가?

물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는 해 준다.


내 엄마는 빚을 내가면서 자식들 교육을 시켜왔지만 난 그렇게까지는 하기 싫으니 난 내 엄마와는 분명 격이 다른 엄마임은 틀림없다.


나도 내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보내고 다섯 자식 힘들게 공부시키고 이제 살만해 지니 큰 아들은 큰 병으로 앓아눕기를 벌써 두 번째.

그 가슴에 든 멍이 얼마나 클 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멀리 있어서 자주 뵙지도 못하고 전화나 가끔 하는데 엄마의 인생이 참 서럽다.

이 책을 읽으며 헌신적이었던 내 엄마를 생각하며 어제는 전화 통화를 길게 했었다.

“엄마, 고마워요. 모든 것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