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우리가 만나 부부로 산 지 딱 15주년.

김 정아 2006. 12. 3. 00:14
 

2006년 12월 1일 금요일

우리가 만나 부부란 이름으로 살아온 지 딱 15년이 되는 날이다.

그렇게 지루하고 갈 것 같지 않던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 쌓여 15년에 이르렀다.

참으로 힘겨웠던 시간을 지나 이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 길들여지고 그래서 편안한 요즘이다.


만난 지 5개월 보름 만에 결혼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워대고 하루하루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한 신혼을 보냈었다.


결혼하고 3년째 여름이었던가?

여름 방학에 공주사범 대학에서 하는 1급 정교사 자격연수자로 명단이 내려왔을 때 너무 기뻤었다.

너무나 합법적으로 남편 옆을 떠나 있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때 큰 아이 낳고 6개월이었고 방학에만 볼 수 있는 아이였지만 아이를 안 봐도 상관없을 만큼 남편에게 지쳐갔던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남편도 정말 바른생활 맨이었다.

맞벌이 하는 나를 위해 시간이 나면 가사 일을 열심히 도와주었고, 바쁜 회사 일을 하면서도 학교로 전화도 자주 해줄 만큼 자상했다.

친정어머니에게도 일주일에 몇 번씩 안부전화를 했던 사람이다.

주사 한 번 부린 적 없고, 폭언 폭행 한 번 한 적 없고, 도박에 빠져 본 적도 없고, 담배도 필 줄 모르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힐긋거려 본 적도 없는(내가 아는 한), 그야말로 모범시민의 길을 걷는 사람이었지만 성격이 어찌나 둘이 안 맞는지 이틀에 한 번꼴로 말다툼을 하다 결국 나의 울음으로 끝나고 화해하기가 반복되었다.

너무 누적이 되어 화해를 해도 남편이 너무 미워져가고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풀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기숙사에 들어가 합숙하며 하는 연수라니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했다.

주말이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올라가고, 주말 이틀을 평화롭게 못 보내 결국 또 말다툼을 하고 강남 터미널에서 헤어지곤 했다.

그 땐 정말이지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살 수 있을까 했었다.

빨리 세월 지나고 어서 늙어 할머니가 되기를 소망했던 지난날들이 엊그제 같다.

그러나 그런 세월이 무심히 흐르지 않았는지 언제부터인가 싸움의 횟수가 줄어가고, 서로를 이해하는 눈도 넓어지며, 서로를 향하는 마음도 넓어져갔다.

혈기 왕성한 신혼 때의 남편보다 40초반의 주름 몇 개씩 생겨가는 지금의 남편이 훨씬 좋고, 지금의 남편보다 백발이 성성해 할아버지가 된 남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만 15주년을 맞으며 많은 것에 감사한다.

이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주신 것에도 감사하고, 또 건강한 아이들을 주신 것에도 감사하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야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지금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딱 지금처럼만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 아침 남편은 나를 꼭 껴안고 “ 지금까지 내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 한다.

“내가 오히려 더 고마워.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다시 읽어보니 저는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잘난 남자로 알고 살아가는 팔불출 중의 팔불출 아내네요.

 

*얼마 전에 결혼 기념일 선물로 미리 받은 시계입니다.

 

2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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