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0일 월요일
우리는 2002년 2월 20일에 말 설고 물 설은 이곳 휴스턴에 도착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이다.
남편의 4년 주재원 근무만 끝나면 한국에 돌아가 다시 일상의 생활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예정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한국에서 복직을 위해 어느 교원 연수기관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도 전입 준비를
하기 위해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예정대로만 되어간다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
예상과 달리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게 될 것이다.
두 아이는 이 땅에서 성장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식 사고 방식에 젖어 있고 한국말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연이와는 지금도 언어 소통에 좀 문제가
있다.
한국어의 어려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내가 자기 말을 잘 못 알아 들으면 대뜸 ‘never mind’ 하고 돌아서
버리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정말 나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버릴까 봐 지금부터 걱정이다.
두 아이가 성장한 후에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는 것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다른 인종을
만나게 되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게 될까 봐 가장 걱정이다.
두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가 살게 될 일은 아마 0%에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에 한국에 돌아가 살 계획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
동안 이곳에 뿌리를 두고 일을 하고 살았는데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10년, 20년 이곳에서
살 생각을 하면 우울해 진다.
나의 4년이 이렇게까지 길게 연장될 줄 몰랐다.
여기서 만 4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미국사회의 시스템을 몰라 새로운 일이 생기면 오래 산 이들에게 물어봐야 하고, 특히 살림살이가 고장 나서 수리를 받아야 할 때
제일 난감하다.
작년에는 초고속 인터넷이 이유없이 2달도 넘게
접속이 안 되었다.
한국에서라면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전화를 해 복구를 시켰겠지만 여기서는 남편의 힘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바쁜
남편 눈치만 봐야 했다.
워낙 바쁜 남편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소리로 인터넷 안 된다는 소리를 했고 언제나 전화해서 고장 신고를 할까
기다렸는데 무려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작년 하반기 언제부터 가스렌지의
앞의 것 두 개가 고장이나 불이 붙지 않았다.
불편하게 뒤의 두 개만 쓰고 있었는데 결국 남편은 서비스 센터에 전화 한 번 못해보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친한 친구 분이 오셔서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해 주셔서 날짜를 잡아 예약을 하고 수리를 해서 거의 3개월 만에
쓰게 되었다.
이런 것들은 미국 생활 4년이 된 지금에도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이 못 된다.
이런 것 말고는
이곳 생활이 이제 많이 익숙하다.
처음보다는 영어도 많이 귀에 들어와, 해 야 할말은 아직도 제대로 못 하지만 듣는 것은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언어부분만 좀 해결이 된다면 이곳에 사는 일이 마냥 불편하진 않을 것 같은데 영 진척이 안 된다.
그래도 이제 마음 가짐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4년이 아니라 앞으로 오랫동안 살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미국 생활 5년째를
맞는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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