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경하기

전화도 없는 깊은 목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김 정아 2004. 2. 13. 02:47

2월 7일 토요일-2월 8일 일요일

지우 가족과 목장 겸 사냥터, 낚시터가 있는 조용한 시골의 한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남편의 회사 거래처에서 일년에 7만 불을 내고 직원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빌려 쓰고 있는 집이다.

 

지난번 남편은 사냥 팀을 따라와 2박 3일을 사냥과 낚시를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쉬다간 곳으로 한적한 분위기가 꽤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I-45번을 빠져 나와 포장도 안된 흙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다 보니 목적지라고 알려주는데 난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화려하고 근사한 별장 같은 곳이라 지레 짐작하고 왔는데 녹이 슨 양철지붕과 쇠막대 몇 개로 문을 만들어 놓고, 자동차가 지나는 길엔 빗물과 황토 물이 섞이고 소들의 배설물이 곳곳에 질펀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먼 길을 왔는데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흙 길을 따라 300M 쯤 가니 넓은 호수가 보이고 키 큰 소나무 숲속에 아담한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전의 기분은 어디로 달아나버리고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호수를 향해 달려가며 환성을 질렀다.

잔잔한 호수와 호수를 빙 둘러 원시림이 펼쳐지고 그곳에 시골의 풍경을 딱 닮아 있는  한 채의 집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놀잇감을 찾아 나섰다.

제각기 낚싯대를 들고 호수가로 모여 들었다.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진 날씨에도 아이들은 오랜 시간 낚싯대를 들고 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이들의 소망을 알았는지 눈 먼 메기 한 마리가 지우의 낚싯줄에 걸려 올라오고 아이들은 메기를 들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참 후에 아이들은 카누를 타겠다고 나선다.

아빠들과 호수 중간까지 타고 나서는 자기들 성에 차지 않았는지 어른들에게 노 젓는 법을 배우더니 스스로 시도해 보겠다고 나선다.

 

겁이 나 만류했지만 아빠들을 태우고 가까운 곳을 한번 나갔다 들어오더니 자신감이 생겼는지 호수 저쪽 끝까지 시린 손을 비벼가며 노 저어 가는데 열중했다.

원석이가 노련해 보여 나도 원석이가 젓는 카누를 타고 잔잔한 호수를 따라 내려가 보았다.

 

호수 끝쪽에서 풀을 뜯던 소들이 우리를 보고 몰려 듣더니 한참동안 우리를 바라본다.

저 소들이 우리 배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나 ?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참을 카누를 타고 놀더니 이제 4-Wheller라고 하는 자동차에 눈이 갔다.

도로용이 아니고 가축을 몰거나 비 포장도로에서 농업용으로 사용되는 자동차로 일반차보다 기능이 한결 단순하다.

남편이 시범을 보이고 같이 간 성인들이 따라 하자 아이들도 시도해 보고 싶어 했다.

작동이 간편해 쉽게 조작할 수 있었으나 난 무서워 집 한바퀴를 돌고 내렸다.

 

제일 큰 아이부터 조작법을 알려주고 운전해 보라고 하자 역시 아이들은 적응력이 빨라 어느새 자유자재로 달리기 시작했다.

집 주위를 돌다 나무에 부닥칠까 겁나 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숲속 길을 따라 들어갔다.

작은 오솔길 주위엔 소들의 방목장이 이어지고 방목장 너머의 깊은 숲속엔 사슴들이 뛰어다녔다.

 

넓은 공터가 나오자 아이들에게 규칙을 정해주고 맘껏 타 보라 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신나 소리를 질러가며 질주했다.

시간이 늦어 온 길을 되짚어 집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캠프파이어까지 마치는 훌륭한 하루가 되었다.

 

그러나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 거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7만 불이라는 거금을 받고도 집주인은 전혀 재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다.

벽돌로 이루어진 거실에서는 마른 흙이 굴러다니고 주방 이곳 저곳에는 석회수가 튀어 얼룩져있고, 샤워실에서도 도저히 샤워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지저분했다.

수건도 차마 쓰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찜찜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으나 담요에서도 모래흙이 서걱거리고, 돌아누울 때마다 기분 나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빨리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나쁘게 생각하면 한 없이 불쾌하겠지만, 이것 또한 여행의 한 추억으로 간직하자 생각하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다음날 제일 먼저 일어나 고요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혼자서 한 없는 행복을 느꼈다.

내게 이런 기회, 이런 축복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하면서.

 

아이들은 어제 했던 일들에 신명이 나 다시 카누를 타고 호수 아래쪽까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4-wheller를 타고, 낚시를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고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휴스턴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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