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거나 슬프거나..

2002년을 돌아보며, 2003년을 계획하며

김 정아 2003. 1. 10. 05:44

2002년 12월 31일 화요일, 2003년 1월 1일 수요일

나에게 2002년은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준 소중한 한 해였다.

천직이라 여기며 학생들과 같이한 생활들이 해가 갈수록 힘들어지며 휴식을 갈망했던 지난 시간들, 몇 년간 고대하며 기다려왔던 남편의 주재원 발령.

이런 소망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진 2002년.

인천 공항을 떠나며 우리에게 다가올 未知의 시간들을 당당하게 맞이하고자 했고 새로운 미국생활을 두려움 없이 개척하고자 다짐했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서울에 돌아가자고 울었고 나는 돈 세는 것부터 , 우유하나 고르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했고 좌충우돌 미국생활을 한지 이제 만 10개월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이제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게 되었고 나 또한 이제 조금 느긋하다 싶게 많이 적응해 여유를 느낄 만큼은 되었다.

그리고 우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서 너 명의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여기 와서 이사와 수술이라는 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실망도 많이 했고 서운함도 많이 느꼈다.

이곳의 이사는 아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 가면서 한다고 이야기해준 사람들이 막상 우리가 이사한다해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여덟 번을 오가며 작은 짐들을 옮겼고 큰 것들을 빼고 거의 나의힘으로 이사를 마쳤다.

수술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너무나 무관심하게 전화 한 통 없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위로해 준 몇 사람들이 있어 고통도 줄었을 것이다.

여섯 살 아래인 사람부터 다섯 살 위인 사람들까지.
이 사람들은 앞으로도 나의 기쁜 일과 슬픈 일들을 같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이런 생활과는 달리 남편에겐 불행한 한 해였다.

최악의 미국 불경기가 계속되어 회사엔 적자가 생기고 책임자라는 직분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7kg이 넘게 몸무게가 빠지고 한 번 눈감으면 아침이 올 때까지 죽은 듯 자던 사람이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아지게 되었다.

2002년 12월 31일 저녁미사!

믿음이 강한 사람은 아니어도 많은 걸 기도했다.

내 나라가 세계 속에 꿋꿋하게 버티며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길,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내 동포들이 서로 사랑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해 동안 너무나 많은 시련을 겪게 했으니 이제 내 남편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원했다.

1월 1일 12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새해를 알리는 폭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지난 독립기념일에는 다른 동네에선 끊임없이 폭죽이 터졌지만 외국인이 많은 우리 동네는 조용했었다.

그러나 인도인도, 일본인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모두 골목에 나와 폭죽을 터트리며 새해를 맞았다.

2003년 새해.

영어 공부에 전념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올 한 해도 많은 것을 배우며 성숙한 삶이 되길 계획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