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경제인

제빵 훈련 중

김 정아 2023. 8. 21. 02:39

2023년 8월 20일 일요일
 
우리 가게는 세 포지션이 있다.
cashier, kitchen, baker인데  다 중요해서 누군가 한 사람이 나가면 트레이닝 시키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그나마 계산원이나 부엌에서 샌드위치 싸는 사람이 나가면 힘들어도 견디는데 베이커가 나가면 거의 비상이 걸릴 듯하다.
 
우리 베이커 Leo는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랑 동갑이어 백발이 성성하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은 사람이지만 하루동안 말 한마디 없을 정도로 과묵해 불만 한번이 없고 쓰고 난 그릇들은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 놓고 빵도 아주 예쁘게 잘 만들고 지각 결석이 한 번 도 없다.
 
그 와이프 엘리샤는 부엌에서 일하는데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조금만 힘들어도 어쩌니 저쩌니 하며 불만을 쏟아낸다.
여기서 일한 지가 15년 정도가 되는데도 지금도 일의 순서를 잘 안 지킨다.
로비에서 먹는 사람과 드라이브 쓰루로 오는 사람의 티켓이 같이 나오면 드라이브 쓰루 것을 먼저 해야 하고, 한 티켓에 샌드위치와 피자가 같이 들어 있으면 피자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샌드위치는 오븐에 들어가 1분 1초, 피자는 2분 7초이다.
그리고 티켓에 음식이 5개 이상이 적혀 있으면 꼭 하나씩은 빼 놓아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고 드라이브 쓰루 것도 나중에 온 차 것을 먼저 하고 먼저 온 차를 늦게 하니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는 것이 일상이다.
너무 게을러서 새로 아줌마가 오면 은근슬쩍 지 일을 떠 맡겨 버리기도 한다.
고기를 자르고 무게를 재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지가 해야 하는 일인데 어느 날 보면 새로운 아줌마가 무게를 재고 있어 엘리샤를 불러 왜 그 일을 저사람한테 시키냐고 물어보면 다 같이 서로 도와 가며 하는 일이란다.
자기는 그 아줌마 일을 도와 주지도 않으면서.
 
새로 온 부엌 아줌마들이 일을 잘하게 되면 레오하고 둘이 왕따를 시켜 못 견디게 만들어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 벌써 세 번째이다.
6월에도 일 잘하는 부엌 아줌마를 왕따시켜 쫒아 내 버리고 그 이후로 들어온 아줌마는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최악 중 최악이 들어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엘리샤가 이렇게 내 눈치를 안 보고 제 멋대로 하는 배경엔 레오가 있어서이다.
한 명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베이커가 지 남편이어서 내가 자르거나 시간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이다.
 
부엌 아줌마를 내 쫒을 때마다 베이커 한 명을 뽑아 트레이닝 시켜야 한다는 각오를 하면서도 베이커를 뽑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아 번번히 내 마음을 주저 앉혀 버렸는데 이 순하디 순한 나를 결정적으로 꼭지가 돌게 하는 일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가게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 엘리샤의 일이었다.
 물건을 오더하고 혹 가게에 오이라든가 아보카도 같은 게  하나씩 부족하면 지가 사오는 것을 조건으로 돈을 더 올려주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이제 더 이상 가게 물건 오더를 안 하겠다며 메니저가 있는데  왜 지가 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그 조건으로 임금을 올려 주었는데 나한테 아주 당당하게 메니저가 해야 할 일이라며 나를 훈계하듯 하는데 내가 이성을 잃을 뻔 했다.
 
머리가 나쁜데 고집이 세고 마음까지 나쁘면 어떻게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너한테 휘둘리지 않을거라'고 다짐을 하고 부엌에서 오랫동안 저녁에 일하는 Oscar에게 전부터 베이커 제안을 했었고 흔쾌히 응했었다.
 
그래서 가게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다른 지점 메니저(한국인)에게 전화를 해 베이커 트레이닝을 좀 시켜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기꺼이 보내라고 해서 어제 오스카가 그 가게에 가서 빵 굽는 것을 배워 왔다.
 
가게 일을 성실하게 나면 나의 지갑은 그들을 위해 언제든 열려있다.
그래서 일 잘하는 직원들이 휴가를 가면 언제든 그들을 위해 휴가비를 주었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직원이 있으면 개학 즈음에 학용품 사주라고 용돈을 주었고, 아파서 못 나오는 직원이 있으면 약값도 기꺼이 지불해 주었고 ,하다못해 부모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 부모의 약값도 대 주었다.
그런데 안하무인으로 나를 자기 직원 다루듯 하는 엘리샤한테 나의 관용은 더 이상 없다.
 
이제 나의 반격이 시작 될 것이다.
 
 
*오늘 아침에 오스카가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스카나 저나 너무 긴장이 되었어요.

*어제 다른 가게에서 만든 빵입니다. 아주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오늘 그 가게 오븐과 우리 가게의 오븐이 다른 점을 캐치하지 못해 오늘 우리 가게에서 만든 빵은 잘 못 만들어졌어요.
나중에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알았기때문에 내일 만드는 빵은 아주 잘 만들어질 것 같아요.

 
*제가 쓴 댓글을 읽다보니 아주 가관입니다.엘리샤 성토의 장이 되어버려 우습네요.
입 무거워 제가 곤란에 빠진 적은 있어도 입 나불거려 화를 당한 적은 없었는데 제 신조를 저버리고 입을 나불대고 있네요.
근데 제가 이렇게라도 안 하면 속병이 날 것 같아서요.
트럭 오더를 못 하겠으면 니 담당인 고기라도 오더할 숫자를 적어 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 해서 지금 메니저하고 문자로 각종 고기 숫자 세고 있네요 



*오늘 오스카가 만든 빵입니다
어제 것보다 훨씬 잘 만들었어요
몇 개 굽는데 1사간 반이 걸렸지만 차츰 나아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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