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짧은 냉전을 마치고.

김 정아 2009. 12. 15. 09:29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원석이는 12학년, 한국으로 따지자면 수능도 끝나고 대학도 결정을 해 놓고 졸업을 기다리는 고 3학생이다.

한국의 고 3, 수능도 끝나고 대학도 결정된 고 3들에게 학교 생활이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고 나머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의미있을 까닭이 없다.

 

원석이도  UT허가서를 받고나서 좀 노는가 싶었는데 중간 성적에서 B가 몇 개가 나왔다.

여기는 매 6Week 마다 성적이 나오고 그 중간의 3주째에 중간 성적이 나온다.

무슨 과목이 몇 점이니까 점수가 안 나오는 과목 더 열심히 하라는 중간 평가서이다.

그 중간 성적에서 b 몇 개가 나온 것을 알고 또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난 "너는 대학도 합격한 아이가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 좀 놀아도 되. 공부 그만해 '라는 소리가 입에서 나올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참 기특하다, 평소에 무슨 일이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엄마 아빠 이야기를 흘려 듣지는 않았구나 라며 대견해 했다.

흘러가는 소리로 남편한테 이번 중간 성적에 원석이 b가 몇 개 나왔는데 만회하려고 엄청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금요일에 원석이한테 전화를 하며 뭐 하냐고 물었는데  티비를 보고 있다는 소리에 화가 폭발을 했나 보다.

엄마를 바꾸라고 하더니 나한테 원석이 차 키를 압류하라는 것이다.

상황이 짐작이 가서 차 키를 뺏으려면 당신이 뺐지 왜 나한테 그러느냐고 순식간에 내 입에서 큰 소리가 나갔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전화를 통해 엄청 큰 소리가 오가고 나는 급기야 "당신 목소리 듣기도 싫으니까 전화 좀 하지마!"하면서 툭하고 끊어버렸다.

잠시 후에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때도 남편 소리는 듣지도 않고 내 할말을 소리소리 질러가며 하고 나니 순식간에 집안 분위기가 냉랭해져 아이들은 제 각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도 서로 쳐다 보지도 않고 이틀을 소 닭 쳐다보듯 보내다가  오늘에서야 내가 사과를 하고 나서 일단락이 되어 원석이도 아빠한테 차 키를 다시 받았다.

 

남편 말이 원래 성적이 떨어지면 차 키를 반납하는 것으로 차를 샀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슨해진다는 것이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아이가 생활이 느슨해지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성적도 떨어진 녀석이 티비나 보고 있다는 것이 한심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심하게 놀래 아빠 눈치를 열심히 보더니 다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회사 일에 치여 스트레스가 한 가득 인 사람한테 막 쏘아 댔으니 나도 참 대책없는 마누라다.

한 순간 참으면 되었을 것을 내 성질대로 다 하고 나니 사실 남편 볼 면목이 없어서 사과도 늦었다.

 

그리고 둘이 헤헤거리니 아이들도 덩달아 화기애애해진 분위기가 되었다.

 

지혜롭지 못하고 좀 참지 못한 나 자신을 엄청 반성하며 삼일을 보냈는데 언제쯤이면 이 부부 싸움이라는 것을 안 하게 될지 모르겠다.